인권단체, 류국현 새 인권위원 퇴진 요구
최근 김대중 대통령이 새로 임명한 류국현 인권위원이 과거 법조비리에 연루된 적이 있으며 법무부 인권과장 시절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인권상황을 왜곡하는데 앞장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92년 7월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자유권위원회(인권이사회)의 한국의 인권보고서 심사 과정에서 법무부 인권과장이었던 류 씨는 "한국에 인권침해는 없다"는 요지의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당시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으로서 회의를 참관했던 최영도 변호사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많이 문제를 삼았던 것이 국가보안법과 사상전향제였는데, 당시 정부측을 대표해 나온 류 씨는 남북 대치라는 특수한 상황이니 만큼 국가보안법과 사상전향제는 어쩔 수 없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인권이사회 위원들이 국가보안법에 의한 구체적인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물으니, 그런 일은 없다고 답했다."고 류 씨를 기억했다.
또한 류 씨는 99년 수원지검 차장검사 시절 이른바 '대전법조비리' 사건에 연루됐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른바 '대전법조비리' 사건이란 이종기 변호사가 검찰, 경찰 및 법원직원에게 사건 소개비조로 모두 1억1천여만원을 지급하다 뇌물공여죄 등으로 구속처벌된 사건이다. 당시 많은 검사·판사·검찰 직원 등이 이 사건에 연루됐음이 드러나, 국민들로 하여금 법조계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음을 다시금 실감케 했다. 류 씨 역시 대전지검 차장검사로 일하던 98년 2월 병원에 입원 중 이 변호사로부터 위문금 명목으로 2백만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고, 당시 검찰은 류 씨에 대해 징계를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후 류씨는 대구고검으로 전보 발령됐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23일 다산인권센터·불교인권위·전북평화와인권연대 등 21개 인권단체들은 성명을 내 "반인권·비리전력자 류국현은 인권위원직을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또 청와대를 향해 류 씨를 인권위원으로 임명한 경위를 밝히도록 촉구하는 동시에, 국가인권위에 대해서도 "올바른 인선과정은 어떠해야 하는지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나아가 인권단체들은 "인권위원 밀실인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인사청문회 도입 등 법개정 작업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21개 인권단체들 중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새사회연대, 인권실천시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은 이날 낮 1시부터 국가인권위 앞에서 류 씨의 인권위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는 류 씨가 국가인권위 전원위원회에 처음 출석하는 때에 맞춰 긴급하게 열린 것이다.
집회에서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조승현 교수는 "인권위원은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권력기관에 맞서 인권을 가장 앞장서서 실현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그런데 법조비리에 관련된 사람이 인권위원이 된다니 너무 한심하다"고 말했다. 또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92년 군사 정권 시절에 인권문제가 없다고 했던 사람이 과연 2002년, 2003년 우리나라 인권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며 인권위원 일을 해나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이어 인권활동가들은 2시께 전원위원회가 열리는 건물 13층으로 자리를 옮겨 연좌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류 씨는 3시 예정인 회의 시간이 3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고, 인권활동가들이 자리를 뜬 후인 4시께 뒤늦게 전원위원회에 참석했다.
김창국 인권위원장이 류 씨를 소개하자 회의를 방청 중이던 인권운동사랑방 범용 상임활동가는 "반인권 비리전력 류국현 신임 인권위원을 거부한다"며 인권단체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범용 상임활동가는 류 씨가 인권위원으로 인선된 데 대해 "인사권자는 아니지만, 국가인권위에도 책임이 있다"며 인권위원 인선기준과 절차 및 밀실인선 재발방지 대책을 묻는 공개질의서를 제출하고 회의장을 나왔다.
한편, 인권단체들은 앞으로도 류 씨의 퇴진을 포함해 인권위원의 올바른 인선을 위한 운동을 계속 벌여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