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성과 관료화 등으로 인권단체들의 강한 질타를 받아온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 아래 인권위)가 회의를 대폭 공개하고 운영구조를 개혁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류국현 사태, 곽노현 위원직 사임 등으로 불거진 '인권위 위기론'에 대한 돌파의 노력으로 해석된다.
회의공개 대폭 확대
먼저 지난 27일 열린 제33차 인권위 전원위원회는 논의안건 3개와 의결안건 3개 중 모두 5개의 안건을 공개하는 파격을 보였다. 이와 관련 인권위 최영애 사무총장은 "앞으로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없다면 소위원회도 적극 공개하자는 공감대가 위원회 내부에 있다"라며, "이는 인권단체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 결과"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전원위원회는 진정인의 프라이버시 문제, 위원들의 자유로운 토론 등을 이유로 사실상 대부분의 안건을 비공개로 처리해 왔다. 이에 대해 '프라이버시 문제는 진정인의 인적사항을 기호로 표시하는 등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회의를 비공개 하겠다는 것은 위원들이 자신의 발언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것이 인권단체들의 지속적인 비판이었다.
최 사무총장은 "처음에는 안건이 공개되면 어떨지 판단이 잘 안 섰는데 1년 동안 운영해 오면서 (안건공개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운영규칙'은 개정하지 않은 채 인권위의 재량권으로 회의공개의 범위를 확대한 조치가 앞으로 계속될지는 불투명하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회의공개를 막아왔던 운영규칙의 독소조항을 대폭 손질할 필요가 있다.
정책소위 특권화 해소
또한, 정책소위의 특권적 지위에 대한 문제도 대폭 해소됐다. 이전까지 정책소위는 인권위 업무의 대부분을 독차지했다. 인권위법 제19조에 열거된 9개의 업무 중 7개가 정책소위의 몫이다 보니, 정책소위 스스로도 법제개선 업무 이외에는 소홀히 다룰 수밖에 없었다. 이에 전원위원회는 정책소위의 명칭을 1소위로 변경하면서, 그 업무를 법제권고와 국내·국제협력으로 대폭 한정했다. 그리고 실태조사와 인권교육은 상임위 업무로, 인권지침 제시 및 조약 가입·이행 권고는 전원위원회 업무로 새롭게 분장했다.
한편, 이전까지 정책소위에만 인정됐던 권고 권한을 다른 소위들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인권위의 인권옹호 활동은 크게 법제개선 권고와 피해구제 권고로 이루어지는데, 지금까지는 정책소위 위원 3명의 전원 합의가 있으면 정책개선 권고가 가능했다. 반면 침해소위와 차별소위의 경우는 위원 3명의 전원 합의가 있어도 피해구제 권고가 불가능했다. 진정사건은 무조건 전원위원회로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전원위원회가 모든 피해구제 권고를 결정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비효율성과 피해구제의 지연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전원위원회는 침해소위와 차별소위의 명칭을 각각 2소위, 3소위로 변경하고, 위원 3명의 전원 합의가 있으면 피해구제 권고를 할 수 있게 했다. 또 소위간 업무량의 균형을 위해 업무량이 폭주하는 소위로부터 다른 소위로 심의안건을 배당할 수 있는 권한을 위원장에게 부여했다.
인권단체들의 비판에 대해 1년이 넘게 복지부동하고 있던 인권위의 변화의 조짐은 늦은 감은 있지만 환영할 일로 보여진다. 인권위가 지금까지의 폐쇄성과 관료성을 반성하고 명실상부한 인권옹호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