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시설, 닫힌 문을 열어라
에바다 복지회 재단측의 비리와 인권유린이 세상에 처음 폭로된 것은 96년.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도 옛 재단의 횡포 속에 에바다는 완전한 정상화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에바다'의 비극은 사회복지시설이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전락하면서부터 이미 예정되었다. 사유화된 시설은 온갖 차별로 멍든 사회적 약자들을 '도구' 삼아, 재단의 배를 불리는 폐쇄된 감옥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에바다가 또 다른 외딴 섬으로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무연고환자에 대한 무분별한 정신의료기관 수용'에 대해,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시정권고를 내린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그동안 사유화된 사회복지시설의 반인권적 행태에 제동을 걸기 위해 많은 해법들이 제시되었다. △시설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사회단체와 주민들이 시설의 운영에 참여하는 방안 △시설보호의 필요여부와 기간 등을 심사하는 입·퇴소심사위원회의 상설화 △시설 이용의 선택권을 이용자에게 부여하는 '바우처 제도' 도입 △정부재정 지원 방식을 시설별 지원에서 개인별 지원으로 변경하는 방안 등. 이같은 다양한 대안들이 현실에 제대로 적용된다면, 더 이상 강제로 시설에 수용되거나 폐쇄된 시설 내에서 인권유린을 당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해법들은 어디까지나 사회복지 '수용' 시설의 온존을 전제하고 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왜 장애인, 노숙자,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수용'돼야 하는가?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씨는 "그들이 수용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정상인'임을 자처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편견 때문이며, 이는 곧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고 말한다.
수용시설이란 애초에 '사회방위' 즉, 사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세력을 격리시켜야 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찬진 변호사는 "수용시설에 입소하는 것 자체로 이미 인권침해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곧, 사회복지시설 문제의 근본적인 대안은 그것의 '폐기'인 것이다. 남구현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격리되어왔던 이들이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사회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은 과제는 그러한 사회적 조건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찾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단계적으로, 대규모시설을 그룹홈 같은 소규모 형태로 전환하면서 탈시설화해야 한다"며, "기존 대규모시설을 개별 이용자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소규모 그룹홈으로 분가하고, 대규모 시설은 개방된 지역복지센터로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더불어 소외된 사람들이 다시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재활·자활 프로그램이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 변호사는 "사회 주변부로 떠밀려 나오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사회전반에 걸친 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