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 반발 딛고…진상보고서 한계 딛고 나아가야
제주 4·3항쟁(아래 4.3)이 55돌을 맞았다. 3일 제주에서 열린 희생자 위령제에는 사상 처음으로 고건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대표들이 참석했고, 지난달 29일에는 4·3이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대규모 인권침해'였음을 인정한 4·3진상조사보고서가 정부차원에서 채택되기도 해 4·3의 위상이 예전과는 달라졌음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4·3의 온전한 역사적 의미가 복원되고 과거와 같은 대규모 인권유린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우익세력들의 마지막 발악
우선 제주4.3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고건 국무총리)가 진상보고서를 채택하는 과정이나 보고서 채택 이후 가해지고 있는 우익세력들의 압력은 4·3의 온전한 복원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4.3진상보고서는 4·3특별법에 따라 2001년 1월 구성된 4·3진상보고서작성기획단(단장 박원순 변호사)이 2년여의 조사활동을 벌인 결과, 미군정 하의 군·경 토벌대와 서북청년단 등에 의해 엄청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음을 밝혀낸 소중한 성과물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신고된 희생자의 수만 해도 1만4천여 명에 이르고, 미확인 희생자까지 포함하면 희생자 수는 2만5천∼3만 명에 이른다. 이중 78% 정도가 군·경 토벌대에 의해 이뤄졌다. 보고서는 또 이러한 민간인 학살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가혹히 탄압하라"는 명령에 의해 이뤄졌고, 미군도 진압작전에 개입했음을 밝혀내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채택되는 과정에서 김점곤 진상규명 위원(경희대 명예교수)이 '보고서의 좌편향'을 지적하며 사퇴하는 한편, 보고서 채택 이후에는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나서 "진상규명이 보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하는 등 보고서의 의미를 깎아 내리려는 우익세력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 우익단체인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도 신문광고를 통해 "4.3은 공산무장폭동"이었다며 "살인자들을 희생자라며 명예회복을 시키겠다"는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고 총리 역시 보고서 채택 당시, '향후 6개월 간 추가사실이 발견될 시 수정할 수 있다'는 유보 단서를 달아 보고서의 최종 채택을 미루는 데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작성기획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김순태 교수(방송대 법학)는 "이는 고 총리가 보수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면서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4.3관련 공식 사과를 내년으로 미루도록 한 것도 고 총리의 작품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2일 제주참여환경연대 등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고 총리의 위령제 참석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김교수는 "향후 6개월간 민간인 희생 사실을 추가로 입증하는 증거 외에 나올 게 있겠냐"며 보고서 내용의 후퇴 가능성을 부정하면서도 "6개월 유보나 정부의 사과 연기 등 이 모든 일은 궁지에 몰린 보수기득권 세력의 마지막 발악인 셈"이라고 평했다.
4.3 보고서, 모호한 타협의 산물
보고서 자체가 가진 한계도 있다. 관련 전문가들에게는 "전반적으로 무난하다"는 평가를, 제주의 유족들과 4.3관련 단체들에게는 크게 환영받은 이번 보고서는 막판 심의과정에서 학살자측을 대변하는 위원들에 의해 주요 용어들이 수정되면서 '조직적인 국가범죄'로서의 성격이 명확히 규정되지 못했다.
애초 초안에 쓰여졌던 '집단살상'이라는 용어는 '집단인명희생'으로, '초토화작전'이라는 용어는 '강경진압작전'으로 변경되는 등 내용상의 후퇴가 일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재승 교수(국민대 법학)는 "강경진압 이라는 말은 국가권력의 과도한 행사를 의미할 뿐, 국가범죄임을 명확히 하기 힘들다"며 "당시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억울한 인명피해가 아니라 명백한 국가범죄였음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양정심 역사학연구소 연구원은 "4.3특별법 자체에 한계가 내정되어 있지만, 이번 보고서 역시 '빨갱이'로 몰려 억울하게 희생된 '양민'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마치 빨갱이는 죽여도 되는 것인 양 해석될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양 연구원은 "4.3을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수난의 역사'로만 바라볼 뿐, 당시 미군정과 경찰 등 부당한 권력의 탄압에 저항했던 '항쟁의 역사'로서는 바라보지 못함으로써, 4.3의 온전한 진실을 드러내지 못했다"며 "지금의 진상규명을 통한 명예회복이 당시 4.3항쟁의 주체들보다는 '살아있는 유족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보고서에서처럼 4.3을 단지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만 규정해서는 4.3의 온전한 역사적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인 것이다.
전체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으로 나아가야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4.3관련 단체들이 지적하듯, 4.3진상보고서의 채택이 "반세기 넘게 제주도민을 짓눌러왔던 4.3의 상처를 씻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분명하다. "내년 위령제에는 꼭 참석하겠다", "보고서가 최종 확정되는 대로 공식 사과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고, 국가 차원의 재발방지 노력이 병행된다면 국가폭력을 제어하는 물꼬가 될 것임도 틀림없다. 그러나 4.3이 광주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4.3을 제주만의 것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수난의 역사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4.3 진상보고서의 채택은 100만이 희생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문제를 푸는 하나의 교두보가 마련된 것일 뿐"이라는 김 교수의 지적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현재 국회 앞에서는 33일간의 국가인권위 점거농성을 마치고 국회를 향해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통합특별법' 제정을 목놓아 외치고 있는 유족들과 인권사회단체가 있다. 이들의 정당한 요구에 응답하는 것 역시 4.3의 온전한 복원과 함께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