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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실체 드러난 김천형무소 집단학살

매장 동원 주민 증언…현장에서 유골, 탄피 등 발굴


한국전쟁 당시 경북 김천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수형자 1천여 명이 국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집단학살 당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통합특별법 쟁취 투쟁본부(아래 투쟁본부)'가 지난달부터 3차례에 걸쳐 현장조사를 벌인 끝에 당시 수형자 일부가 매장된 곳을 발굴함에 따라 폭로됐다. 이로써 '한국전쟁 직후 북한 인민군이 남하하자 김천형무소 수형자들을 대구형무소로 이송했다'고 주장해 온 법무부의 공식 입장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이번 학살지 발굴은 최근 투쟁본부가 당시 수형자들을 매장하기 위한 구덩이를 파는 데 강제 동원된 이모 씨 등 주민 2명의 증언을 확보하면서 현실화됐다. 투쟁본부에 따르면, 당시 김천시 구성면 돌고개 계곡에서 벌어진 학살 현장에 강제 동원되었던 이들은 "국군은 돌고개 아랫마을 주민 4-5명을 동원해 구덩이를 파고, 수인복에 삭발을 한 수형자 60여명을 그 구덩이 주변에 서게 한 후, 뒤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동원된 마을 주민들에게 매장하라고 명령했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증언에 따라 지난 8일 투쟁본부는 돌고개 계곡에서 매장지로 추정되는 5곳을 수색, 이 가운데 1곳에서 탄피 3개, 신발 1족, 단추 1개 및 두개골 등의 유골을 수습했다. 이어 9일에는 공개 발굴을 실시해 조각난 두개골과 다리뼈, 턱뼈를 비롯해 학살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탄피와 탄두 등 수십 점을 추가 수습했다.

투쟁본부 이창수 상황실장은 "이번 발굴로 김천형무소 수형자들에 대한 집단학살의 실체가 드러났으며, 동시에 그들을 인근 형무소로 이감했다는 법무부 등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이 밝혀졌다"며 이번 발굴의 의의를 지적했다. 이 상황실장은 또 "당시 김천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4.3관련 기결수들의 실종건이 국가차원의 조사에서 밝혀지지 못했는데, 이번 발굴을 통해 그들이 집단학살되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대전과 전주 형무소에 뒤이어 김천형무소의 학살지까지 발견됨에 따라 전쟁 발발 초기 20여 개의 형무소에 구금돼 있던 수형자들이 실제 국군에 의해서 학살되었을 개연성도 더욱 높아졌다.

한편, 9일 발굴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투쟁본부는 "주민들의 증언과 당시 기록을 통해 확인된 바에 따르면, 당시 김천형무소에는 제주 4.3사건 및 여순사건 관련자 등 1천여 명과 예비검속된 보도연맹원 상당수가 구금되어 있었다"며, "이번 발굴을 통해 이들이 1950년 7월 10일에서 28일 사이 국군에 의해 몇 차례에 걸쳐 여러 곳에서 조직적으로 학살되었다는 기존의 진술과 자료들이 사실로 입증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1989년 발간된 『김천시지』(이근구 편저)에서 "김창룡 당시 육군 정보국 제4과장이 보도연맹원과 수형자들의 학살을 직접 지휘했다"고 기록한 바와 일치한다.

현장 보전을 위해 발굴작업을 중단한 투쟁본부는 "국가차원에서 전문적이고 공식적인 매장지 발굴과 유전자 감식 등을 통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통합특별법의 즉각적인 제정을 거듭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