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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국보법 철폐 현수막 못 건다"

대법, 판시 이유에서 국보법 비난도 안된다고 밝혀


최근 대법원이 국가보안법에 대한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행위까지 가로막는 어이없는 판결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3일 대법원(주심 대법관 박재윤)은 "춘천시청이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담은 현수막 게시를 막은 것은 위법하다"는 서울고법의 판결은 수긍하기 어렵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지난해 10월 서울고법은 "반민족·반통일·반인권 악법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라는 내용으로 민주노총 강원본부가 제작한 현수막이 옥외광고물등관리법 제5조 2항에 규정된 금지광고물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춘천시청이 걸지 못하도록 한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서울고법은 '국보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행위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상 금지된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을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면서 현수막 게시를 가로막은 춘천시청의 위법성을 인정, 행정명령에 따른 자의적인 표현의 자유 침해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그러나 대법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을 내용으로 하는 국가보안법이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존재의의 또한 적지 않으므로, 이 법이 반민족·반통일·반인권적 악법이라고 비난되어서는 안된다"며 국가보안법을 비판하는 입까지 서슴없이 틀어막았다. 나아가 재판부는 "위와 같이 매우 과격하고 선동적인 문구로 표현되어 게재된 현수막을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통행하는 장소에 게시하고자 하는 것은 …억제의 필요성과 공익이 매우 크다"면서 서울고법의 판결이 잘못이었다고 나무랐다.

이러한 판결 내용에 대해 소송을 대리했던 이상희 변호사는 "대법원이 판시 이유로 '국가보안법은 비난받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제시한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면서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법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바라보며 법을 비난하는 것 자체를 문제시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소송을 제기했던 민주노총 강원본부의 나철성 대외협력부장도 "근래 사법부가 보수적인 판결로 일관하고 있는데, 말도 안되는 보수적인 판결에 굴복할 수 없다"면서 "계속 현수막을 내거는 등 국가보안법 철페 투쟁을 줄기차게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서 주심을 맡은 박재윤 대법관은 2000년 임용 당시부터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혔으며, 임용 이후에도 보수적 판결을 잇따라 내놓아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2001년 1월 '인권운동가 서준식 씨 대한 보안관찰 족쇄 유지' 판결, 올 1월 '레미콘노동자의 노동자성 부정' 판결, 지난해 2월과 올 2월 '조폐공사 파업과 한양공영노조 파업과 관련, 구조조정 반대파업은 불법' 판결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