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없는 보상금 주면서 주민 내쫓고 개발에 따른 이익은 고스란히 공기업인 주택공사가 독점해버리는 것이 바로 주거환경개선사업이라는 겁니다." 대전지역철거민공동대책위원회 상임대표 김규목 목사(빈들교회)는 1년이 넘게 대전 용두동 철거민들이 맞서 싸워오고 있는 소위 '주거환경개선사업'이라는 '개발사업'의 본질을 이렇게 꼬집었다.
용두동 철거민들의 노숙농성이 23일로 꼬박 400일째를 맞는다. 지난해 7월 18일 마지막 남은 집들마저 모두 철거된 뒤, 주민들은 중구청 앞 비닐움막에 의지해 1년이 넘는 세월을 거리에서 버텨왔다. 2천만원도 채 안 되는 토지 보상금으로 평당 350만원이 훨씬 웃도는 아파트에 입주한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소득층을 위한다던 주거환경개선사업이 가난한 이들을 삶터에서 내쫓고 오갈 데 없는 철거민으로 만든 사이, 주택공사는 건설원가보다 평당 1백만원이 넘는 돈을 얹어 아파트를 분양해 이익을 챙기고 있다. 또 개발지구에 똬리를 튼 '떴다방'들은 분양권 매매를 통해 배를 불렸다.
처음 농성을 시작할 때는 모두 42가구가 참여했지만, 지금은 29가구만이 남았다. 그래도 다른 철거투쟁에 비해서는 비교적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버텨내고 있다는 게 주위의 평이다. 그러던 가운데 지난 19일, 대다수 60세가 넘는 고령의 철거민들 가운데서 비교적 건강하던 차세순 씨(64)가 뇌출혈로 쓰러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병원에서는 아무래도 회생이 어려울 거라고 한다. 2001년부터 계속되어 온 오랜 철거투쟁과 무책임하고 때로는 비열하기까지 한 당국의 태도가 이들의 몸과 마음을 짓이겨 놓았기 때문일까.
그래도 '보상금 더 받아내려고 저런다'는 일부의 따가운 시선에도, 달겨드는 모기떼와 칼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이들이 1년이 넘게 버텨올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어이없는 '주거환경개선사업'에서 나왔다. 이들의 요구는 소박하다. '정주권을 보장하라!' 주민을 위해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것, 즉 '복지'가 이 사업의 목적이라면, 주민들이 삶터를 잃지 않도록 '현금' 보상이 아니라 '현물' 보상이 되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보상금 주면서 돈이 안되면 떠나라는 식으로 주민들을 내몰 것이 아니라, 적어도 같은 평수의 집은 특별 공급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김 목사는 말한다. "동일한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곳이 대전에도 서너 곳 있고, 전국적으로는 수십 곳에 달합니다. 그래서 주택공사가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용두동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더 버티는 것 같습니다." 주거환경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주민'은 내쫓고 '투기업자'들만 불러들이는 개발사업은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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