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벼리

[벼리 1] 서민주거안정? 차라리 그 입을 다물라

주거권의 시선으로 뜯어본 이명박 정권의 부동산 정책

최근 정부는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8.21), 「도심공급 활성화 및 보금자리 주택 건설방안」(아래 9.19대책), 「부동산 세제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종합부동산세법, 도시재정비촉진을위한특별법 등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하나다. 주택 공급을 늘리고 거래를 활성화하겠다는 것. 경기 위축을 투기 조장으로 풀어온 역대 정권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이후 주거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정책들이 주거권의 실현을 위해 장기적으로 마련되었던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주거권 침해를 부추겨왔다. 주거권의 내용은 분명하다. △집이 필요한 사람이 △적절한 주거비 부담으로 △적당한 수준의 집을 △안정적으로 점유(소유 혹은 장기임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의무를 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직접 주택을 공급하거나 시장 기능을 이용할 수 있고 시장을 적절히 통제하기도 해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살만한 집에 살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장기간에 걸친 전망 아래 구체적인 실현 계획들을 세워야 하며 이를 위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이명박 정권의 부동산정책을 주거권의 시선으로 뜯어보면서 인권에 기반을 둔 접근을 위한 과제를 헤아려보자.

집은 누구를 위해 지어지는가

역대 정권이 모두 그랬듯 이명박 정권 역시 서민주거안정을 위해 주택을 공급한다는 립서비스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10년 동안 5백만 호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9.19대책은 서민주거안정에 기여하기보다는 건설자본과 집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일 뿐이다.

일단 주택수요를 판단하는 근거가 모호하고 불충분하다. 거주 목적의 실수요 계층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당 계층의 소득 수준 등이 반영된 주택공급계획을 만드는 것은 주택정책의 기본이어야 한다. 그러나 미분양의 적체로 이미 공급 과잉 단계라는 주장도 많은 상황에서 ‘공급 부족’이라는 현실을 지어내기 위한 수요 예측이 아닌지 의심된다. 또한 고소득층의 수요가 과다하게 측정되고 반영된 반면 저소득층의 수요는 과소 측정된 문제도 있다. 고소득층은 자가소유율도 높은 편이며 교체수요까지를 포함해도 이들을 위해 공급되는 주택이 전체의 40%인 계획은 적절한 분배라고 볼 수 없다. 최근 나오는 미분양아파트 대부분이 중대형 평형이라는 점에서도 타당성이 없다.

한편 정부는 “정부 지원이 없이는 내집 마련이 어려운 무주택 저소득 가구” 약 292만 가구를 정책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소득10분위의 5분위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현재의 경제 상황을 볼 때 부적절한 기준이다. 그렇다보니 5천만 원 미만의 임대보증금으로 세들어 사는 481만 가구와 비교할 때 매우 적게 추정되었다. 게다가 자기 집이지만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약 120만 가구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에게 의미 있는 주택은 전체의 20%도 안된다. 이 계획에 따라 공급되는 주택의 70% 이상이 이미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수요 예측에 근거한 계획이 아니라 각종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핑계만 되고 있는 셈이다. 개발구역으로 지정되기도 쉬워지고 개발 사업을 추진하기도 쉬워지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투기꾼들이 챙기기도 쉬워진다. 그린벨트 해제, 준공업 지역에 주택 공급 등 땅을 균형 있게 쓰려는 기준들도 허물어지고 있다. 수도권으로 과도하게 인구가 집중되는 것을 막기는커녕 조장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주택공급계획의 들러리로 세워질 뿐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책의 문제점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부동산 거품이 부푸는 동안의 주거비 부담과 점유의 불안정성, 부동산 가격이 경착륙할 때 발생할 경제위기로 인한 부담이 그것이다.

열심히 살아온 당신, 떠나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은 짓지 않으면서 각종 개발로 내쫓기는 쉽게 만든 것이 9.19대책이기도 하다. 최근의 뉴타운 개발을 보면 개발을 통한 공급량의 증가는 거의 없다. 집을 부순 만큼 다시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도심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던 저렴한 주거지를 고가의 아파트단지로 바꿔놓는 데서 발생한다. 부자들에게 집을 내주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빼앗는 것이 바로 개발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적절한 세입자대책을 제공받지도 못하고 이미 오를 대로 올라버린 집값 때문에 살던 곳과 가까운 곳에 사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정부는 강제퇴거를 금지하고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살 수 있도록 하려는 대안은 마련하지 않으면서 뉴타운 추가 지정, 역세권 고밀복합 개발 등만 외치고 있다. 또한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의무적으로 짓도록 하는 소형평형과 임대주택의 비율을 계속 줄이려고 하는 등 주거권을 점진적으로 실현해나갈 의무를 명백히 위반하는 후퇴 조치까지 서슴치 않아 매우 우려스럽다. 개발사업의 기간을 단축하겠다며 절차에서의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개발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기간이 단축된다는 말은 그만큼 주민들을 위한 개발을 모색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말일 뿐이다. 특히 현재의 제도 안에서 개발 사업은 소유주들에 의해서만 추진된다. 마치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이 있는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인정했던 수백 년 전의 인권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거주하지도 않으면서 재산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실제로 거주하는 세입자들이 더욱 빨리 내쫓기게 된 것이다.

아무 집이나 주는 대로 받든지 말든지

이와 짝을 이루는 것이 보금자리주택단지 계획이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그 자리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도시 내 공급 확대 기조는 고소득층만을 위한 것이다. 이번 계획으로 도시 안에 공급하는 18만 호 중 임대주택은 2만 호, 11%에 그치고 있다. 이는 주택재개발 사업에서의 임대주택 의무비율인 17%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반면, 도시 근교나 외곽에 짓겠다는 12만 호 중 8만 호가 임대주택이다. 이와 같은 분리정책의 문제점은 이미 충분히 지적되어 웬만한 국가는 이런 정책을 시도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가 슬럼화되고 임대아파트에 대한 직·간접적 차별이 강력한 것은 과거 임대아파트 정책이 ‘분리’에 경각심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주·이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공급되는 주택들이 지역 곳곳에 분산될 필요가 있다.

그린벨트의 해제 자체도 신중해야 한다. 인권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의 권리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라도 자연의 파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그린벨트를 해제하더라도 그것은 땅의 성질을 포괄적으로 바꾸는 것이므로 충분한 검토 후 이루어져야 한다. 개발계획도 마찬가지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지역이 기존의 지역과 어떤 관계망을 맺을 것인지,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경제구조는 어떻게 만들 것인지 등에 대한 전망이 있어야 한다. 지금 추진되는 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을 아예 빈곤의 늪으로 밀어 넣게 될 가능성이 짙다.

한편,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을 소형 평형으로만 공급하는 것은 여전하다. 현재의 공급 평형으로는 3인 가구만 되도 살기가 쉽지 않다. 함께 사는 사람의 수에 적당한 면적은 주거권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건설비용과 임대료 책정을 단순 비례로 연동시키지 않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소득수준에 따라 임대료를 차등 부과하는 제도를 점진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아마도 유일하게 지켜볼 만한 정책이 면적에 대한 적정 기준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모두 집주인이 되라고?

이번 주택계획에서 실질적인 임대주택은 60만 호, 12%에 그쳐 오히려 줄어들었다. 지분형 공공임대주택을 포함해 공공이 짓는 주택 가운데 분양을 위한 것이 90만 호로 오히려 많다. 저소득층의 자가 소유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하나 과연 적절한 정책일지는 의문시된다.

특히 장기전세형 임대아파트에 대한 호응이 높은데도 비중을 줄이고 대신 만든 지분형 공공임대주택은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는 데에 거의 기여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분형 임대주택이라는 공약을 성사시키는 것이 유일한 효과가 될 지도 모르겠다. 이 주택은 단계적으로 지분금을 납부해 10년에 걸쳐 자기 집으로 만드는 것이다. 공공이 건설한 주택의 최초가격이 2억 원이라고 하자. 그러면 일단 6천만 원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입주자가 된다. 다음 지분금을 낼 때까지 4년 동안 약 3천만 원의 임대료가 지출된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마지막 지분금을 내기 전까지 지분금과 임대료로 내는 돈이 이미 2억 원이 된다. 집값 상승률에 따라 다르겠지만 마지막 지분금으로 7천만 원에서 1억 원 사이의 돈을 더 내야 비로소 자기 집이 된다. 이것은 저소득층에 대한 재정지출을 하지 않겠다는 말일 뿐 공공임대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월임대료 부담이 없는 장기 전세형 임대주택에서 10~20년의 거주 기간을 보장받는 것과 비교할 때 이득이 별로 없다. 자기 집을 갖게 되는 것은 좋지만 자가 소유가 항상 더 좋은 것이라는 전제 아래서는 정책이 제대로 나올 수가 없다. 한국에서 자가 소유에 대한 욕구가 높은 것은 세입자는 임대료 올려달라는 말과 방 빼라는 말에 늘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거권의 중요한 요소인 점유의 안정성은 소유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는 소유를 하지 않더라도 점유의 안정성이 확보되도록 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 분양주택 위주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은평뉴타운이나 판교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 공공이 장기간 임대하는 주택이 다른 나라에 비해 극히 부족한 현실에 비추어 봐도 주택계획은 매우 부적절하다.

주거·토지 공공성의 토대를 다져야 할 때

문제는 오랜 시간 동안 확인되었다. 주거권의 관점에서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도 드러난다. 집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시작이다. 그/녀들에게 적당한 수준의 집을 공급하기 위해 어떤 집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확인해야 한다. 새로 지어 공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 주택을 활용하는 방안까지 포함해 주택계획을 세워야 하며 취약계층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개발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하며 개발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순환식 개발을 하도록 해야 한다. 민간의 주택시장을 견제할 수 있는 수준 정도는 공공이 임대하는 주택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면서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책들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자원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거권을 위해 중요한 것은 역시 땅과 돈이다. 국가는 토지정책이나 세금정책을 통해 이런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이명박 정권은 오히려 각종 감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토지나 주택과 관련된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도 모두 낮아질 예정이다. 적절한 수준의 부동산 보유를 유도하기 위한 세금을 두고 정부 관료들이 나서서 “징벌적”이며 “세금폭탄”이라고 아우성치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 걷히는 돈이 주거정책에 쓰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주거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걷히고 주거권 실현을 위해 사용되는 세금이 오히려 필요한 것은 아닐까. 징벌적일 필요도 있다. 땅과 집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두고 누군가 더 가져갈수록 누군가는 빼앗겨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이것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의도된 것이며 정치적인 것이다. 주거불평등 그 자체를 인권침해로 바라봐야 한다. 가져간 자들이 그만큼 더 돌려놓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권력의 문제만이 아니다. 주거권의 실현을 위한 정책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거대한 건설자본 때문이다. 건설산업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보니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이들이 짓는 주택 물량이 너무 많아 사실상 정부가 주택·부동산 정책을 세우고 이들이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분양 아파트를 사서 국가재정으로 급전을 돌려주는 정책에서부터 수요와 무관하게 더욱 많이 건설할 수 있도록 하는 주택계획까지 나오는 이유가 그것이다. 지금의 건설사들에게 이게 약이 될지 독이 될지도 쟁점이지만 근본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고질적인 다단계 하도급 착취 구조와 각종 비리, 도박경영 같은 것들을 그대로 둔 건설경기 부양은 성공할 수도 없다. 건설자본의 횡포로 인해 시장에서 발생하는 고통은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되는데 이들을 위해 쓰여야 할 재정이 오히려 건설자본을 살리기 위해 쓰이는 것은 정당하지도 못하다. 건설산업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방향을 정하고 그에 맞춰 규모를 줄이면서 운영 구조 등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건설자본이나 살리자는 정부

미국의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조심스럽게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부동산 투자 상품의 개발을 통한 유동성 증가는 지금의 위기를 제공한 원인이기도 하다. 집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고 주택·부동산 정책은 주거권의 실현에 따라 계획되면서 경제정책과 만나야 한다는 ‘인권에 기반을 둔 접근’이 자리 잡혀 있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적어도 문제의 씨앗이 모기지론은 아닐 수 있었을 것이고 대출을 받아 주택을 마련한 사람들이 크게 고생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런 경제위기의 한가운데서, 역대 정권들이 저질러온 잘못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 돈이 풀리는 시기에 규제를 완화하면서 집값 상승도 ‘성공’했던 것이다. 지금은 규제를 완화한다고 돈이 풀리는 때도 아니다. 꺼내는 말마다 부동산 시장의 하향 안정세를 흔들어놓으니 차라리 그 입을 다무는 것이 낫겠다. 위기감을 허세로 달래는 것인지, 정말 멍청한 것일 뿐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종부세 감세안에서도 보듯 자신들만을 위한 정권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정권은 우리에게 필요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덧붙임

* 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