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다!’ 올해 상반기 한국사회는 낯설지만 오래된 문제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특별법 제정으로 문제가 일단락된 것이 아니라 서막이 열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오랜 동료이자 전세사기 문제 해결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던 이원호 님을 만났습니다.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이원호입니다. 빈곤사회연대와 한국도시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상근은 아니지만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역할을 할 때도 있습니다.
주거권운동을 오래 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대학 때 빈민운동 동아리를 했어요. 90년대 중반이고 공부방 활동을 했는데 공부방을 하는 동안에도 개발로 철거되고 없어지는 문제들이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철거 투쟁도 동아리의 일이 됐죠. 철거민 지역에 들어가서 활동하기도 했고요. 그때 쭉 같이 했던 친구가 졸업 후에 홈리스운동을 먼저 시작했어요. 그 친구가 주거연합이 활동가 구한다는 소식을 알려주더라고요. 그때 본격적으로 주거권운동을 시작하게 된 거죠.
사랑방도 그 즈음 주거권운동을 함께 했는데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제 활동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은 2009년 용산참사지만 그 직전의 2008년이 굉장히 의미 있었던 시기라고 생각해요. 1월부터 세계사회포럼 즈음해 한국에서 주거권공동행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아 주거권선언을 만드는 작업을 같이 했잖아요. 인권운동사랑방이랑 빈곤사회연대랑 여러 단체들이 같이 주거의날 있는 10월까지 쭉 이어지는 행동을 했잖아요. 그때 정말 촘촘하게 활동했던 게 중요한 변화를 만든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주거의날 행사가 주거연합 중심으로 진행되고 다른 단체들은 연대발언 하는 정도였는데 10월 17일 빈곤철폐의날과도 연결하면서 주거권을 폭넓은 의제로 만든 것 같아요. 주거의날은 ‘철거민의날’로 여겨졌다면 2008년 이후로는 주거권이라는 말로 여러 의제들을 서로 공유하고 활동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에 앞서 사랑방이랑 주거권운동네트워크 만들면서 여러 의제들을 펼치던 시간이 있어서 가능했죠.
지금 한국에서 ‘주거권’은 어디쯤 와있을까요?
한국에서 ‘주거권’은 오래전부터 있었죠. 90년대까지는 주로 집을 빼앗긴 사람들, 철거민들의 이야기였어요. 96년에 해비타트(HABITAT) 회의에 한국 참가단이 다녀오기도 했고. IMF 경제위기 이후에 ‘노숙인’ 얘기가 좀 됐고.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로 여러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때 우리가 같이 <진보복덕방> 만들었잖아요. 쪽방이나 고시원 등 여러 주거환경도 다루고, 청년, 여성, 청소년, 장애인, 성소수자의 주거에 대해서도 말했고요. 하지만 당시에 당사자운동으로 주목받지는 못했어요. 사람들이 체감하는 문제로서 주거권이라고 하면 201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청년주거운동이나 장애인 탈시설운동, 청소년주거권운동 같은 것들로 운동이 확장되기도 했고요.
변화의 배경은 무엇일까요?
90년대 중후반까지는 서울이나 대도시에 개발사업이 진짜 많았죠. 강제철거 이슈가 압도하는 게 당연했어요.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뉴타운’이라고 도심개발이 진행되면서 상가세입자 문제가 더 많아졌어요. 그리고 주택금융이 확대됐죠. 빚내서 집 사라고. 오래전부터 세입자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90년대까지도 세입자 문제의 대부분은 강제퇴거였어요. 우리가 2006년에 <주거권과 주거공공성 실현을 위한 모색> 워크숍을 했잖아요. 주거권의 고민이 그렇게 넓어지고 운동의 전략을 찾게 되는 시기였던 거죠.
개인적으로는 용산참사 이후에 더 주거권에 방점을 찍게 됐어요. 그전까지 저한테 주거권은 빈민운동으로서의 철거운동에 가까웠어요. 저한테는 반성적인 시간이기도 했는데 그전까지 상가세입자들 문제는 결국 ‘보상’으로 해결하는 거라서 조금 거리를 두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무런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철거민들이 엄청나게 싸워야 했고 참사를 겪게 된 거라 제도나 정책이, 사회운동도 역할을 충분히 못했다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때 용산참사 현장에 사람들이 많이 왔잖아요. ‘아직도 이런 폭력 철거가 있는 줄 몰랐다’고 하시면서 ‘어떻게 철거민들에게 연대할 수 있냐’고 묻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럴 때 철거민만의 문제가 아니고 나의 문제로 여기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주거권의 문제로 더 생각하게 된 거죠.
한국의 주거정책이 건설과 공급 중심이었고 그래서 계속 개발을 했고, 우리 헌법은 아직도 “국가는 주택개발정책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잖아요. 90년부터 최근까지 거의 매년 50만 호 가까이 주택이 공급됐지만 자가점유율은 거의 제자리고 우리의 주거권은 더욱 박탈돼왔던 거라는 이야기를 더 하게 됐어요. 우리가 사는 ‘곳’에 대한 문제로. 그래서 용산정비창 부지 팔지 말고 공공임대주택 내놓으라는 투쟁도 하고 있어요.
그 문제가 ‘전세사기’라는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문제가 있었어요. 문의가 오기도 했고요. 당시에는 되게 어렵게 느껴졌어요. 변호사들은 방법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다르게 고민해 보자고 했지만 다들 어려워했어요. 그때도 저는 주택을 공공이 매입해서 계속 거주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현실성이 없다고 보는 이들도 많았고요. 그러다가 작년부터 주거 관련 단체들이 토론회도 하고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어요. 전세 ‘사기’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겠다는 우려가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피해자가 목숨을 끊는 일까지 생기고 대책위(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를 서둘러 꾸렸는데, 사건이 계속 이어지면서 정말 바쁘게 움직였어요.
정부에서도 대책을 내기 시작하고 국회에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까지 제정되긴 했는데 어떻게 봐야 할까요?
처음 제가 문제를 접할 때는 보증금 돌려받는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주택을 어떻게 공공적으로 활용할 거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당사자들을 만나면서부터 완전히 달라졌어요. 당사자들에게 그게 중요한 건 당연한데, 문제에 접근할 때에도 보증금을 개인 간 채권채무 관계로만 보면 문제가 잘 안 보여요. 한국은 가계부채가 정말 많은데 대부분 주택 관련 대출이잖아요. 전세대출도 많았고요. 국가가 세입자를 채무자로 만들면서 누군가 집을 구매할 수 있게 해준 거예요. 그러니까 보증금을 못 받게 된 상황은 국가의 주거부동산정책 때문에 발생한 거예요.
특별법안 논의할 때 우리는 보증금채권을 공공이 매입하라고 했어요. 빚을 지게 만든 것부터 공공이 같이 책임지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주택을 공공임대로 매입하면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걸로 이어질 수도 있고요. 그런데 예상보다 특별법이 정말 빠른 속도로 제정되면서 정작 대안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거의 안됐어요. 정부는 작년에도 깡통전세 상황을 살피고 있었어요. 하지만 전국화될 것으로 예상하진 않았죠. 피해자들의 죽음이 이어지면서 서두른 건데 지금도 대략 2년 안에 끝날 문제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특별법도 딱 2년 기간으로 만들었고.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아요.
앞으로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할까요?
‘전세사기’라고 하면서 정부는 ‘사기’로 접근하고 있지만, 이미 사람들은 ‘전세’ 문제로 보고 있어요. 보증금 돌려받지 못했던 일이나 돌려받지 못할까 불안했던 기억이나 돌려받았지만 고생했던 경험 같은 것들에 보편적인 공감대가 있는 거죠. 정부는 개인이 사기당한 사건에 왜 국가 재정을 쓰냐고 몰아갔지만 그런 프레임이 별로 먹히지 않았어요. 그만큼 사람들이 불안을 공유하고 있다는 거죠. 특히 청년층에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어요. 민달팽이유니온은 작년 초부터 당사자들을 많이 만나오기도 했어요. 보증금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입자로 살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예요.
여전히 정부는 건설공급 중심으로 자가소유를 부추기는 주거정책을 추진하고 있어요. 그런 정책으로 전세가 확대된 거죠. 전세가 어쨌든 주거비 부담이 적은 형태잖아요. 그래서 전세가 많았는데, 2010년 이후부터 월세가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도 정부는 전세에 자원을 투여해요. 주택구입이나 전세자금으로 대출을 해주니까 결국 주택구매 가능 계층에게 정부의 자원이 몰리는 거예요. 보증금도 마련하기 힘든 저소득층은 월세로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극히 일부가 받는 주거급여 말고는 지원이 없어요.
그런데 주거비 지원이 전부여서도 안돼요. 주거급여 인상되는 거 맞춰서 쪽방 임대료가 올라가거든요. 결국 임대인한테 가는 돈이 되는 거예요. 주거비 자체를 낮추는 정책이 필요해요. 그러려면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정책이 함께 가야 해요. 민간임대주택을 매입해 공공임대로 활용하는 방식 위주로요.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규제와 공공임대주택 확대로, 주거환경과 품질을 적정 수준으로 만들고 적당한 주거비 부담으로 오랜 기간 거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생활권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어쨌든 역전세 문제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더 크게 대두할 수 있어요. 그때 우리가 주거권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중요해요.
(◀ 2023년 반빈곤연대활동에서)
빈곤의 문제와도 닿아있는 것 같아요. 가난한 사람들은 돈 벌기 어렵고 빚내야 살 수 있는데 돈을 잃기도 더 쉬운 구조니까요.
예전에는 전세가 ‘주거 사다리’라고 해서 재산을 만드는 효과도 있었는데, 요즘 전세대출은 당장의 이자가 월세보다 싸니까 이용하는 분들이 많아요. 임대료가 너무 비싸니까, 대단히 좋은 집에 거주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대책이 없어서 이용하는 거죠. 처음엔 저도 이해를 못 했는데 방법이 없었던 거예요. 그러다가 부동산시장 조건이 달라지니까 그 문제가 다 가난한 세입자들한테 떠넘겨진 거고요. 이번에 제정된 특별법에서는 이중계약 피해자가 피해자로 인정을 못 받아요. 대출받아서 계약하고 이사 가는 당일 잔금까지 넣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그전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서 입주도 못한 거예요. 대출받고 그 집에 발 한 번 못 들여놓고 이삿짐은 컨테이너에 맡기고 친구 집을 전전하면서 그 대출금을 다 갚아야 하는 상황인 거죠. 국가 정책이 잘못되지 않았으면 이렇게 채무자가 될 이유가 없었던 거예요. 은행들에 책임을 묻는 것도 필요해요.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대책위 활동은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갈 계획이에요. 보증금 규모에 대한 규제도 요구하고 사각지대 문제 모니터링도 하고 민주노총이나 여러 사회단체들도 만나려고요.
인권운동사랑방에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면
주거권운동에서 사랑방이 대안적인 고민과 얘기를 많이 했다고 생각해요. 오래됐지만 그때 나눴던 얘기들이 여전히 많은 고민으로 이어지고 있고요. 지금은 그때보다 인권의 측면이 더 강조되어야 할 때이기도 해서 어떤 계기들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요. 최근 주거권운동은 기후위기에 대한 고민도 시작하고 있는데, 생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과 조금 다른 지점들도 있고 에너지 빈곤층 문제 정도로 접근되기도 해요. 이런 고민들을 연결하면서 필요한 담론을 만드는 데 사랑방의 역할이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