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느 날부터 동네가 소란스러워졌다. 동네가 재개발된다는 것이다. 재개발이 뭐지? 엄만 가게도, 집도 이사 가야 한다고만 하셨다. 그리고 이어진 긴 한숨. 우리만? 아니 동네 사람들 다. 그럼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는 거야? 예린이, 민정이네도 가야 해? 옆집 할머니도? 엄마는 고개만 끄덕이셨다. 갔다가 다시 오는 거야? 우린 못 와. 왜? …….
개발이란 내가 살던 곳이,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4차원 공간으로 사라지는 거라고 미소는 생각했다.
그날도 미소는 학교가 끝난 뒤 엄마 가게로 달려갔다. 그런데 가게 안엔 그 시간이면 늘 와서 간식을 먹던 우체국 언니 대신 시커먼 잠바를 입은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 하나만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아저씨 이제 그만 나가시라고요!”
“XX년아 네가 뭔데 손님한테 나가라 말라야~아!”
“아저씨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왔다가 그냥 나가잖아요.”
“XX, 그년들은 손님이고 난 손님 아냐! XX 어디서 손님을 이따위로 대접해. 이게 어느 나라 법이야. 법이냐고?! 그러게 왜 싸인을 안 해 가지고 이 고생을 사서 하시냐고~ 이 거지 같은 X아, 얼마나 더 받아 처먹으려고 그러는 거야, 엉?!”
“아저씨! 그 돈 갖고 어디 가서 뭐해 먹고 살라는 거예욧! 이 가게 하려고 대출받은 돈도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데… 대체 어디 가서 뭘….”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던 엄마는 잠시 뒤 다시 말을 이으셨다.
“그리고 제가 왜 거지예요?! 우리가 언제 공돈 달라고 했어요? 집도, 가게도 이전에 살던 만큼만 누릴 수 있게 해달라는 것뿐이잖아요. 단골 터서 먹고 사는 장사꾼들한테 하루아침에 다른 데로 가라는 게 말이 돼요? 그래서 임시 시장만이라도 만들어 달라는 건데 그게 왜 거지같은 거냐고욧?!”
미소는 지금껏 엄마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큰소리로 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지어낸 얘기지만, 재개발 지역에선 흔히 있는 실제 이야기다.
그 새벽, 그들의 외침
지난 1월 19일 새벽 용산동4가 한 상가 건물 옥상. 30여 명의 사람이 어둠 속에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 추운 겨울에 어디로 나가란 말이냣! 재개발 조합과 건설회사(시공사)는 먼저 생계 대책을 마련하라!” 그들은 용산4구역에서 세 들어 살거나 장사하던 사람들이다. 용산4구역은 2003년에 재개발(도시환경정비사업)이 결정되었다. 재개발은 낙후되었다 싶은 지역을 밀어내고 새로 꾸미는 것을 말한다. 그럼 새 집, 새 건물이 들어서고 환경이 나아지면 좋은 일인데, 왜 사람들은 빈 건물 옥상 위로 올라간 것일까?
시공사만 배불리는 개발
재개발 과정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먼저 시청이나 도청에서 개발 구역을 정하면, 이후 개발 과정은 조합과 큰 건설 회사들이 도맡아 진행한다. 조합은 개발지역에 있는 집이나 땅, 건물의 주인들 모임이다. 이들은 큰 건설 회사와 손을 잡고 아파트도 짓고 상가도 짓는다. 그러자면 큰돈이 드는데, 당장 그럴만한 돈이 없으니 조합에선 건설 회사한테 돈을 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건설 회사가 힘을 더 갖게 된다. 건설 회사들이 개발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당근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럼 좀 더 많이 벌려면? 돈은 최소한도로 들이고, 최대한 빨리 지어, 비싸게 팔면 된다. 이런 이유로 건설 회사와 조합은 개발 구역에 사는 주택, 상가 세입자들에게 턱없이 적은 보상금을 쥐어 준 채 나가라고 몰아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조폭 영화로도 친숙한 ‘깍두기’ 머리의 용역들이다.
물론 개발 과정에서 살터를 잃는 건 세입자뿐이 아니다. 평수가 적은 집과 땅을 가진 사람들도 새로 지은 아파트, 상가 값을 감당 못해 그 지역을 떠나게 된다. 결국 개발은 돈푼 꽤나 있는 자들의 잔치판이며, 시공사들 배나 불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직 멀쩡한 건물들까지 갈아엎어야 할 이유는 없다. 유럽의 경우 10년, 20년 이상 된 건물들도 조금씩 고쳐 가면서 살지 않는가.
그냥 굶어죽어야 하나요?
용산4구역 주택, 상가 세입자들이 들고일어난 가장 큰 이유도 부당한 보상금 때문이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보상금은 딱 예전만큼만 살 수 있으면 족한 돈이다. 그런데 정든 지역을 등 떼밀려 떠나는 것도 서러운데, 보상금이 적어 다른 곳에서 집도, 가게도 얻을 수 없었다. 집세, 가겟세가 껑충 뛰어올라 개발 지역 주변으로 이사하는 건 꿈도 못 꾸고 보상금으로 살 만한 곳을 찾아 떠돌아야 하는 것이다. 가게에 집이 딸려 있던 최 모 할머니는 한순간에 집도 가게도 잃었다. 어느 날 용역들이 들이닥쳐 가게를 산산조각 낸 것이다. 할머니는 15년 전 5천만 원을 대출받아 한식집을 시작했는데 집 보상금은 한 푼도 못 받고, 가게 보상금만 2천만 원을 받게 돼 있다. 그 돈으로는 어디 가서 집과 가게를 얻을 수 없다.
더욱이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재산은 사람이다. 오며 가며 생긴 단골들 덕에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하루아침에 다른 곳으로 떠나라는 건 굶어죽으라는 말이나 같다. 용산4구역 상가 세입자들이 가건물이라도 지어 임시 시장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왜 세입자들을 흉악한 범죄자로 꾸미는 걸까
그러나 조합과 시공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깡패 같은 용역들을 데려와 가게와 집을 부수는 등 계획대로 밀어붙였다. 결국 최 씨 할머니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살기 위해 한 겨울 새벽, 옥상에 올라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건 경찰의 물대포와 무자비한 폭력뿐이었다. 용역들에게 시달리던 세입자들이 도움을 요청할 땐 늑장을 부리던 경찰들이 세입자들을 진압할 땐 득달같이 달려왔다. 테러범, 납치범 같은 범죄자를 잡을 때나 출동시킨다는 경찰특공대까지 앞세워 위풍당당하게.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되었고, 세입자 다섯 명이 죽었다. 망루에서 불이 났는데도 경찰은 진압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대형 화재가 발생해 망루 안의 사람들이 죽었다. 게다가 불타는 망루에서 무사히 탈출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구조가 없어 숨졌다. 망루에서 옥상으로 뛰어내려 걷는 것을 본 사람도 있는데, 경찰이 망루에서 나온 사람들이라도 제대로 구호했더라면 사망자는 줄어들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이 죽은 경위 따위엔 관심이 없다. 또한 이들이 왜 이 추운 겨울에 건물 옥상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는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그저 오로지 불이 나게 한 죄를 모두 세입자들에게 돌리려고만 한다. 아니 기필코 불은 철거민들이 질렀어야 한다고 정부는 생각하는가보다.
양회성, 이성수, 이상림, 한대성, 윤용헌. 이들이 죽은 지 반달이 지났다. 여전히 정부는 사과 한마디 없고, 진압 책임자도 여전히 건재하다. 정녕,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나라는 없는 걸까. 봄이 와도 마음이 녹지 않는 요즘이다.
덧붙임
여미숙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