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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하루소식 '그때 그 사건' ⑩ 군산 성매매 여성 화재참사

두 번의 화염이 휩쓴 군산, 성매매의 오늘

2000년 9월, 그리고 2002년 1월 군산 대명동과 개복동에서 일어난 화재참사는 19명 성매매 여성의 희생으로 이들의 인권실태를 가장 끔찍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화재사건 이후 이곳은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다시 찾은 인권유린의 현장

어스름 저녁이 다가올 무렵 도착한 군산시 개복동. 약 1년 8개월 전 여성 14명을 화염의 불길로 사라지게 한 성매매 업소 '대가'는 이제는 당시 화재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이중삼중의 합판으로 가로막혀 있던 창문은 여전히 굳건히 닫혀 있었지만, 건물 전체 외벽은 말끔하게 페인트칠된 상태였다.

그러나 14명의 성매매 여성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거리에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간간이 문을 연 성매매업소를 찾을 수 있었다. 일반 주택이 즐비하고, 청소년들이 자주 오가는 영화관이 버젓이 들어서 있고, 10m만 가면 중심 도로가 나오는 그곳에서 그 끔찍한 사망사고 있었다는 것은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개복동에서 약 1km 떨어진 대명동 화재 현장 역시 2차선 도로를 끼고 상가가 밀집해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 1층은 인테리어 업소가 개업해 성업중이다. 쇠창살이 있던 2층 창문은 쇠창살을 모두 철거한 후 깨끗한 유리를 입혀 놓았다. 이곳이 성매매 업소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은 2층으로 통하는 가운데 튼튼한 철문과 철문 위의 쇠창살 정도.


대명동 성매매업소들 아직도 성업중

군산 여성의전화 민은영 인권부장은 "대명동에서는 7여개 성매매업소가 계속 영업중"이라고 말했다. "화재사건으로 군산시에서 성매매가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았다. 지역을 둘러싼 상권이 성매매 사업과 유기적인 연결 고리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 주민도 군산시도 성매매를 근절시키기 위해 적극 나서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

성산업은 거대 자본을 투자하지 않아도 고수익이 보장되기에 업자들이 얼마든지 지역을 바꾸어 성매매를 계속할 수 있다. 민 인권부장은 "참사가 있었던 개복동 건물에서는 현재 성매매가 중단되었지만, 이는 성매매가 근절되어서가 아니라 업소가 대부분 대전이나 익산 혹은 군산시 나운동으로 옮겨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화재사건 이후 업소들은 성매매 여성들의 감금이나 성적·금전적 착취가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있자 법망을 피하기 위해 교묘하게 성매매 여성을 다룬다고 한다. 민 인권부장은 "성매매 업주들은 여성에게 일기와 개인 장부를 쓰지 못하게 하면서 감시의 끈을 더욱 강하게 하고 있다. 예전에는 성매매 업소에서 숙식을 제공했으나 요즘은 근처에 방을 얻어 공동생활을 하게 하고 출퇴근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성매매 근절, 여성운동의 주요 의제로

사건이 있기 전 여성운동에서 성매매 여성의 인권은 주요한 의제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성매매 문제를 다룰 때에도 기지촌이라는 특정 지역의 문제로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대명동, 개복동 화재사건 이후 여성운동은 성매매 여성의 인권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지원하고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게 된다. 성매매 여성도 이제는 여성단체에 구조를 호소하고, 경찰의 조사를 받을 때 여성단체를 대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들이 성매매 업소로부터 탈출을 해도 이 사회는 이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성매매 여성을 위한 전용 쉼터는 전무한 실정이다. 현재는 가정·성폭력 상담소의 쉼터로 보내지거나 가족에게 인계되는 경우도 있다. 성매매 여성은 대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기에 전문적으로 치유하고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현재는 성매매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민 인권부장은 "업소의 협박전화, 조직폭력배의 끊임없는 추적 등이 이들을 불안으로 몰아넣고, 자립의 기반이 전무한 상태에서 다시금 이들은 또 다른 착취의 굴레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향락문화와 여성의 성(몸)을 매개로 돈을 벌고 있는 착취구조가 존재하는 한 성매매 여성은 계속 양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매매방지법 제정 시급

성매매여성인권지원센터 정미례 소장은 "성매매는 여성의 몸을 팔아 돈을 벌어들이는 인신매매로 명백한 인권침해이며, 이를 묵인하는 것은 사회전체가 행하는 폭력"이라고 지적한다. 100만명이 넘는 여성이 성매매와 관련되어 있는 현실에서 과연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민 인권부장은 "국가가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통해 착취고리를 차단하고 여성들이 성매매가 아닌 다른 형태로 자립할 수 있는 심리적·의료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올해 여성계는 성매매방지법의 제정을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조배숙 의원을 비롯하여 86명 의원들이 발의한 '성매매알선등행위의 처벌 및 방지에 관한 법률'안은 지난 7월 1일 공청회를 거쳐 현재 법사위에 계류중이다.

법안은 기존에 '윤락' 이나 '매매춘'이 아닌 '성매매'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성매매와 관련된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며, 불법수익에 대해서는 국가가 몰수해 성매매 알선자들이 성매매를 통해 이득을 도모하는 행위를 차단하고자 한다. 또한 '성매매된 자'의 면책조항에서 성매매와 관련한 모든 채무관계를 무효로 하고, 이들의 지원체계를 의료·경제적 측면에서 다층화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함께 민 인권부장은 사람들의 인식 변화도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대의 성을 함부로 착취하거나 짓밟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