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어린이·청소년 대거 상경…종로 가득 메운 반핵 함성
"경찰 아저씨들이 무서워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머리를 때리고 그랬어요. 나라에서는 왜 원자력에만 돈을 쏟아 붓고 대체에너지에는 돈을 안 쓰는지 모르겠어요. 서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면 부안에 핵폐기장이 들어서지 않을 거예요. 핵폐기장은 안돼요. 부안 말고 우리나라 어디에도 안돼요"
29일 친구들과 25대의 버스를 나눠 타고 부안을 출발해 서울에 올라온 유미옥(부안초 6) 어린이는 상경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날로 등교거부 37일을 맞은 부안 지역 어린이, 청소년 1100여 명은 오후 3시 서울 종묘공원을 가득 메운 채 '핵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부안 지역 어린이·청소년의 문화 한마당'을 열고 핵폐기장 유치 철회와 대체 에너지 개발을 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자리에는 부안군 진서면 민들레학교 학생들이 부안군수, 대통령, 진압경찰의 가면을 쓰고 나와 위도 주민 회유부터 경찰의 폭력진압에 이르는 과정을 연극으로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핵 없는 세상에서 공부하기 위해 등교거부를 계속하겠다"고 밝혀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어 핵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풍선 날리기와 대체 에너지 개발을 촉구하는 편지낭독이 이어졌고, 행사장 주변에서는 반핵 만화와 사진 전시회가 열렸다. 행사를 마친 어린이, 청소년들은 조계사까지 반핵평화행진을 벌였다.
'핵폐기장 백지화, 핵발전 추방 범부안군민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29일 현재 부안 초중고생 7067명 중 63.4%인 4484명이 등교거부에 참여하고 있다. 학교에 가는 대신 이들은 변산공동체, 민들레학교 등 인근 대안학교에서 여는 '반핵민주학교'에 참여한다. 계화면 생태학교 '시선'에서 반핵민주학교 교사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유병희 씨는 "핵폐기장을 주제로 한 집단토론과 자연체험 등 다양한 생태교육을 진행해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운다'며 무척 즐거워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렇게 어린이, 청소년들까지 핵폐기장 저지 투쟁에 나섰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정부는 지난 8일 김종규 부안군수 폭행사건 이후 '치안유지' 명목으로 주둔 경찰병력을 60개 중대 6천여 명으로 3배 증강해 '준계엄 상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대책위 집계에 따르면 29일 현재 구속 16명, 불구속 52명, 즉심 75명, 수배 10명 등 반핵투쟁에 앞장선 사람들에 대한 탄압도 극심한 실정이다.
부안 수협 앞에서 매일 열리고 있는 촛불집회 사회를 맡아오다 수배된 김희정 씨는 "경찰은 대책위 사무실이 있는 부안성당 앞에서 수시로 검문을 자행해 관계자들의 행동반경을 좁히고 한편으로는 부안 주민을 폭도로 매도하며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도록 겁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다음 달 1일부터 11일까지 문규현 신부 등 대책위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삼보일배를 부안 수협 앞에서 전라북도 도청까지 진행하고 △다음달 2일부터 5일까지 전국 각지의 연인원 500명이 참여하는 '반핵현장활동'을 열며 △다음달 10일부터 전북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저지투쟁을 벌이는 등 투쟁을 이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