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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 테러와의 전쟁, 피 흘리는 인권 ①

세계를 휩쓴 광기, '테러와의 전쟁'


국정원이 또다시 인권을 볼모로 자신의 권한만 강화하는 테러방지법을 추진하고 있다. <인권하루소식>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의 가공할 위협과 테러방지법안의 문제점을 총4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2001년 9월 21일 이집트 출신 물리학자 아메드 알레나니 씨는 미국 뉴욕 거리에서 경찰에 체포돼, 테러 연루 혐의를 받고 이후 5개월 동안이나 감옥 신세를 져야 했다. 그의 차에 있었던 세계무역센터 사진 2장이 그가 테러용의자로 몰린 이유. 미 수사당국은 그가 테러에 연루됐다는 증거를 끝내 제시하지 못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 워치가 밝힌 이 사례는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낳은 수많은 인권침해 목록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에서 9·11 이후 테러 용의자로 몰려 구금된 사람은 자그마치 1천 2백 명 가량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중동 혹은 동남아시아 출신 외국인들이었다. 쿠바 관타나모 만 미군 기지에 구금된 650여명의 존재는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 하에 벌어진 가혹한 인권침해의 대명사로 꼽힌다. 미 정부는 아프간 전쟁 포로 혹은 알 카에다와의 연계 혐의로 갇혀 있는 이들에게 제네바 협정 적용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미국 사법관할권(혹은 영토) 밖이라는 이유로 미국 법률이 보장하는 공정한 재판에 대한 권리까지 깡그리 무시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내국인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미 정부가 대테러 명분으로 뚜렷한 혐의도 없는 평화운동가나 시민단체 회원 등의 명단까지 비밀리에 만들어 이들에 대한 공항 보안검색을 더욱 철저하게 하도록 해 왔다는 사실은 그 단적인 예다.


인권탄압의 법제화, 반테러법

이러한 인권침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들은 9·11 이후 쏟아진 각종 반테러 법률과 조치들이다. 미국은 9·11 직후인 2001년 9월 13일 테러퇴치법을 시작으로 10월 25일 패트리어트법을 통과시켰다. 곧 이어 11월 13일 조시 부시 미 대통령은 행정명령으로 테러용의자에 대한 특별 군사법정의 설치를 발표했다. 패트리어트법은 수사 당국이 테러 용의자를 언제든 압수수색, 구금, 추방할 수 있도록 했고, 은행 기록과 전화 및 인터넷에 대한 감청권까지도 확대시켰다. 나아가 현재 미 정부는 비밀정보기관과 연방수사기관의 권한을 강화하는 '국내안전강화법안', 이른바 패트리어트 II를 입안해 놓은 상태다.

영국에서도 2001년 12월 새로운 반테러법이 통과된 후, 테러 용의자들은 기소나 재판 없이 구금되었다. 휴먼라이츠 워치는 올해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영국 경찰이 9·11 이후 명백한 혐의가 없는데도 특정 인종·민족·종교 공동체를 표적 삼아 그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했고, 그 숫자가 3백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인도에서는 "기존 법으로 충분하고 테러방지법은 불필요하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도 무시한 채 2002년 3월 테러방지법이 제정됐고, 내부의 정치적 반대자와 종교적 소수자, 달릿(불가촉천민) 등이 테러방지법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고 휴먼라이츠 워치는 말한다.

2003년 3월 발표된 국제인권연맹(FIDH)의 보고서에 따르면, 반테러법이 새로 통과된 다른 나라들에서도 난민과 이민자의 권리 침해, 정보기관의 권한 강화 등 자유권에 심각한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의 최대 수혜자=정보기관

각국의 반테러법 혹은 조치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경향은 △정보기관의 강화 △외국인의 지위 및 권리의 약화 △모든 사람의 자유 축소로 압축된다.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은 전 방위적인 감시의 위협 하에 놓이게 됐고, 국가기관들의 정보 수집, 조사 활동은 한층 강화됐다. 비밀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의 분리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각국의 정보기관들은 9·11이 빚어낸 세계적 공안정국을 자신들의 권한 강화의 계기로 십분 활용한 것이다. 그리고 '테러방지'는 인권침해를 정당화하고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이에 대해 이계수 교수(울산대 법학)는 "우리가 귀 따갑게 들어온 안보논리가 국가보안법과 연계되면서 정치적 표현과 활동을 제약했듯이, 미국의 안보 논리는 '반테러법'과 결합하면서 외국인·정치적 소수자의 인권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