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대선 정국을 꽁꽁 얼어붙게 했던 KAL858기 '실종'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움직임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지난 2001년 조직된 '김현희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는 3일 서울 정동 프란시스코 교육회관에서 지난 16년 동안 진상규명에 매달려왔던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김현희 KAL858기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천주교 신부 115인 선언'을 발표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전열을 다시 가다듬었다.
1987년 당시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향하던 KAL858기는 버마 상공에서 갑자기 종적을 감춰 지금까지 시신은커녕 잔해 한 조각도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탑승자는 승무원과 승객을 합해 모두 115명. 당시 정부는 "북한의 김정일이 88올림픽을 방해하려고 북한 공작원 김현희에게 친필 지령을 내려 폭파시킨 것"이라고 발표하고 시신만이라도 찾아달라는 가족들의 울부짖음을 묵살한 채 김현희의 자백만으로 수사를 종결짓는다.
대책위와 가족들은 우선 KAL기 '폭파범'으로 내세워진 김현희라는 인물에 강한 의혹을 던진다. 정부가 제시한 △김현희의 어릴 적 사진의 귀 모양(동그란 귀)과 체포 당시의 모양(칼 귀)이 전혀 다른 점 △자필진술서에서 사용한 단어가 북한에서 쓰지 않는 단어라는 점 △김현희의 아버지 앙골라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수산대표 김원석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 등은 김현희가 '조작된 북한 공작원'이라는 의혹을 뒷받침해준다.
또한 버마의 카렌족 거주 지역이 유력한 불시착 지역이었는데도 갑자기 조사지역을 안다만 해역으로 바꿔버리고 이마저 10일 동안의 짧은 조사로 끝낸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
KAL858기가 '폭파'되었다는 것도 아무 증거 없는 정부의 일방적 '발표'였을 뿐이다. 당시 이란-이라크전이 벌어지고 있던 바그다드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폭발물을 비행기에 장착하는 것도 불가능할 뿐더러 폭발물의 종류와 양도 항공기를 흔적 없이 가루로 만들어버릴 만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대책위와 가족들은 바로 이러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이 사건 역시 '수지김 사건'처럼 안기부의 조작극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이며 수사책임자였던 현 정형근 의원을 비롯해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 등 관련 책임자들을 철저히 조사해 한 점 의혹도 없이 진상을 밝힐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대책위와 가족들은 자체 진상규명을 위해 대법원 확정 판결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구했지만, 서울지법이 이를 기각해 현재 행정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한편 이날 선언에 참여한 대책위 집행위원장 신성국 신부는 "최근 대책위 활동이 활발해지자 국정원 충북지부장이 내가 소속된 청주교구 주교를 찾아가 '이미 끝난 사건이고 반박 내용도 북한 주장과 같다'며 대책위 활동을 중단시킬 것을 종용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의혹투성이인 사건을 애써 묻어버리려고 하는 국정원의 태도가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