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사회보호법 폐지되리라 믿었는데"
<인권하루소식>은 얼어붙은 인권의 땅을 녹이기 위해 힘겹게 '겨울터널'을 지나고 있는 다섯 사람을 만나 노무현정부 1년의 인권성적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그는 소년 같은 미소를 지닌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보호법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투지와 집념으로 똘똘 뭉친 투사가 된다. 청송보호감호소 출소자 조석영 씨. 그는 지난 8월말 출소한 이래 이달 17일까지 꼬박 64일째 '사회보호법 폐지'를 요구하는 국회 앞 1인시위를 이어왔다. "처음엔 근위병처럼 4시간씩 꼼짝 않고 서 있었더니 죽겠더라고요.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단식농성으로 사회보호법 흔들다
무려 23년간 악명을 떨쳐온 사회보호법은 올해 폐지의 문턱까지 다다랐다. 한나라당 서상섭 의원에 이어 최근 열린우리당이 폐지법안을 제출하기까지 청송의 피감호자들은 지난해부터 목숨을 건 집단 단식농성을 무려 5차례나 단행했다. 지난 5월의 네 번째 단식농성까지 그 중심에는 조석영, 항상 그가 있었다. "처음 일주일은 입에 물 한 모금도 안 댔습니다. 제가 물을 마시면 다른 사람은 죽을 먹게 되니까요."
그렇게 피감호자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이 법의 폐지를 촉구하자, 사회에서도 점점 더 큰 메아리가 돌아왔다. "피감호자들의 단식농성이 사회보호법 폐지 흐름의 기폭제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보복에 대한 큰 두려움 없이 농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들 뒤에는 인권단체들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피감호자들이 '법 폐지' 요구를 내걸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대부분은 '우리 힘으로는 폐지가 어렵다'는 현실론을 들며 처우개선을 요구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동료들을 하나둘 설득해 나갔다. "나무를 통째로 흔들어야 알밤이라도 떨어지지, 알밤 하나하나 돌팔매질해서는 못 맞추면 그만 아니냐며 설득했지요." 그러자 동료들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사람 말려죽이는 법이 사회보호법이죠"
그런 그도 처음에는 모범적으로 생활하다 하루 빨리 나가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한다. 표창도 여럿 받았다. 그러나 청송에서 보고 느낀 사회보호법의 해악은 그를 조금씩 투사로 만들어갔다. 동료 몇몇과 단식농성을 모의하다 발각돼 엄청나게 맞고 62일간이나 사슬에 묶인 채로 징벌방에 갇힌 적도 있었지만, 그의 집념은 꺾이지 않았다.
"동료 수용자들 보면 대개가 저학력에 극빈층 출신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오지에다 가둬둔 채 사회에서 도태시키고 말려 죽이는 법이 바로 사회보호법입니다. 그러다 보니 출소해도 갈 곳 없는 사람들, 다행히 일자리를 구한다 해도 하루 15-16시간씩 쥐꼬리만한 월급 받으며 일하다 때려치우고 또 다시 절도 같은 범죄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사람들이 많은 거지요."
청송에서 만난 한 동료는 출소 후 건축자재 공장에 취직했다 손가락이 잘려 깁스를 한 상태에서도 쓰레기 소각일을 하다 발가락에까지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러고도 한글을 몰라 업주에게 속아 보상금도 못 받고 쫓겨나 여기저기 전전하다 다시 청송으로 돌아왔다, "사회보호법에 대한 원한이 워낙 사무치다 보니 처음에는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출소자들이 그렇게 밉더라고요. 사회보호법 유지의 근거를 제공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점차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보이더군요."
상황이 이런데도 법무부는 '사회보호'를 명분으로 보호감호제도의 개선을 고집하고 있다. '큰 도둑질'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국회에서도 기다리는 폐지법안 통과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국회 앞이 저를 성장시킵니다"
"올해는 꼭 폐지되리라 철떡같이 믿고 있었는데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래도 국회앞에서 다양한 분들 만나뵈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우리 범죄자들은 지금까지 자기 하나 보며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파병반대나 국가보안법 폐지 시위하시는 분들 보며 남을 사랑하는 것,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이 뭔지 알게 됐습니다." 청송에서부터 사회보호법 문제를 파고들다 보니 유사 법률인 구 사회안전법과 국가보안법의 존재까지 알게 됐다는 그는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 시민 걷기대회에도 참여했다.
출근하는 기분으로 매일 국회에 간다는 그는 작은 소망 하나도 키우고 있다. "법이 폐지되면 출소자 자활을 지원하는 일을 꼭 해볼 생각입니다. 그래야 하나 있는 아들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