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느꼈던 감격과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재야 인권변호사 출신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정도로 한국사회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역시 인권변호사라고 불리던 이들이 국정원장과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반세기 넘게 이 땅을 옭아매었던 인권탄압의 굴레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지금은 허탈함과 실망감이 크다. 서슬퍼런 국가보안법도 여전하고, 노동자와 농민들의 생존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로운 지경이다. 지난 1년 동안도 과거 정권과 마찬가지로 인권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이 희생을 치러야 했다. 외국인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고, 한진중공업의 김주익위원장은 목숨까지 내던졌다. 농민들도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고속도로 통행을 막으면서까지 자신들의 절박한 처지를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이경해 열사는 자결을 통해 한국 농민뿐만 아니라 전세계 농민들의 절박한 현실을 호소했다. 핵폐기물로부터 생명과 환경권을 위협받은 부안주민들은 매일 밤 촛불을 들고 시내로 모여야 했다. 상도동 철거민들은 공권력뿐 아니라 사설진압부대에 포위된 채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송두율 교수도 국가보안법이라는 분단과 반인권의 사슬이 얼마나 한국사회를 옥죄고 있는지 실감해야 했다.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 수백만 명은 경제인으로서의 권리를 정지당했다.
이처럼 대통령 한 사람을 당선시키는 것으로 회복될 정도로 한국사회의 반인권적 관습과 제도는 허술하지 않았다. 지난 겨울 대선에서의 승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끝인 줄 알고 착각했다. 결국 한해 동안 우리는 자유와 권리는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며 좌절해야 했다.
그러면 극복대상은 무엇인가? 정치적으로는 군사독재정권에 뿌리를 둔 보수야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은 그들을 다수당으로 만든 국민들이 궁극적인 인권의 장애물이라 할 수 있다. 한국사회를 짓누르는 인권침해의 주범은 정치인들이나 관료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해온 국민들, 즉 지난 반세기동안 반인권적 이데올로기와 패러다임에 젖어 살아온 대다수 국민들이다.
한국사회 곳곳에 내재한 반인권의 굴레를 벗어버리지 못하면 인권현실은 개선되기 힘들다는 것을 올 한해 동안 뼈저리게 실감해야 했다. 그 중 가장 시급히 극복해야 할 대상이 언론이다. 반인권적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류언론에 인권이란 딱 하나의 의미만 갖는다. 그들만의 인권, 즉 언론의 자유뿐이다.
인권을 경시하고 무시하는 언론으로 인해 노무현 정권의 인권정책은 번번이 좌초됐다. 언론이 인권현실을 외면하고 왜곡시키기 때문에 많은 인권운동가들이 거리로 나섰다.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인권운동차원에서도 언론개혁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장호순 님은 순천향대 신문방송학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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