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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부안 주민투표' 관리위 출범

내달 14일 핵폐기장 자체 찬반투표…직접민주주의 실험대

정부가 부안 핵폐기장 찬반 주민투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가운데 참다못한 주민들이 스스로 투표를 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가 주민투표 관리 역할을 자임하고 투표일정을 제시해 성사 가능성을 높였다.

15일 박원순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사회단체와 종교계 인사 22명이 결성한 '부안 방사성폐기장 유치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아래 주민투표관리위)는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달 14일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투표결과 찬반 득표수가 같거나 투표율이 1/3 미만이면 어느 일방도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또 △투표권을 공고일인 1월 25일 현재 부안군에 주민등록을 둔 20세 이상인 자에게 부여하고 △찬반운동은 공고일로부터 투표일 전날까지 20일간 진행하며 △부재자투표도 실시하기로 했다. 투표 전에는 찬반 양측이 참석하는 TV토론회와 읍면별 토론회 등도 열린다.

주민투표관리위는 지난해 12월 27일 부안대책위 측이 '정부가 무려 한달간이나 비공식 대화를 지연시키면서 주민투표 일정과 시기를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산자부장관의 사퇴와 사과로 여론을 입막음하면서 오히려 부안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며 각계에 올 2월 주민투표 관리를 제안함에 따라 구성됐다. 부안대책위 측이 독자 투표를 선택한 것은 일정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반대 분위기가 수그러들기를 노리고 있는 정부만 믿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번 주민투표는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올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주민투표법을 준용해서 실시되지만 법적인 효력은 없다. 그러나 투표 결과 주민 다수가 핵폐기장을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나면 "지금 분위기는 찬성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한다"는 정부의 투표일정 연기 명분도 사라질 전망이다. 민주노총 이회수 대외협력실장은 "민중의 희망을 저버리면 어떤 체제도 정권도 유지될 수 없다"며 "정부통치의 무력화를 의미하는 이번 투표는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투표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정부의 독단적 정책 결정에 맞서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줄 직접민주주의의 실험대가 될 전망이다.

한편 핵폐기장 찬성단체인 '(범)부안군 국책사업 유치추진 연맹'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불법 주민투표를 단호하게 거부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주민투표 저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어 향후 투표 성사와 결과 인정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