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 역할극의 주인공이 되어보자
대학에서 다음과 같은 역할극을 시도해 본 적이 있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특정한 상황을 보여주면, 그 다음엔 관객들이 한 명씩 배역을 맡아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 연기를 해보는 것이다. 특정한 상황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성차별 사례로 구성하고자 했다. 그렇게 결정된 것이 '명절 풍경'이다. 부엌에서 제사상을 준비하는 어머니와 딸, 마루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에 답답함을 느낀 관객들은 손을 들고 무대에 나가 배우를 대신해 연기를 하면서 주어진 상황을 바꿔보려 했다. 어머니 혹은 딸의 역을 맡은 관객들은 '여성들간의 공조' 체제를 꾸미기도 하고, 일을 안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하고, 남동생을 설득하거나 아버지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왜 제사상을 여자들이 차리는가,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을 할 필요가 있는가, 음식 못 하겠으면 설거지라도 해라, 하다 못해 상이라도 펴라, 왜 아버지의 조상에게만 제사를 지내는가, 상은 여자가 차리고 제사는 남자만 지내는가, 딸은 자식이 아닌가, 이런 것들이 주된 문제의식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관객들이 노력을 해도 상황은 좀처럼 바뀌지를 않았다. 다른 배우들은 "그게 순리다"라는 말로, "전통을 무시하겠다는 거냐"는 말로, 혹은 "버릇없이 굴지 마라"는 호통이나 무응답으로 '그녀'들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러한 반응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해 온 가족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저렇게 단순한 상황도 극복하지 못하다니. 성별 역할분리란 것이, 부계혈통주의란 것이 얼마나 지독하게 강고한가를 아마 모든 관객들이 뼈 속 깊이 느꼈을 것이다.
그 때, 한 남성관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자기가 아들의 역할을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무대에 올라간 관객은 아버지에게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도 이것은 정말 옳지 못한 일 같다고 주장했고,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같이 만들겠다고 고집을 피웠으며, 누나에게 함께 부모님을 설득해보자고 권했다. 그러자 불과 몇 분만에 상황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역할극을 준비한 사람들에게나 관객들에게나 충격적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해보지 못한 상황을, 한 남성이 그리 어렵지 않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목격하고서 우리는 무력감과 허탈감마저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명절이 여성들을 지독하게 괴롭히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전 국민을 성차별에 익숙해지도록 길들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이러한 명절문화가 여성들의 아우성과 노력만으로는 변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번 설날, 역할극의 주인공이 되어볼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노력해서 지켜야 할 인권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조이여울 님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편집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