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고 있는데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평화 유랑단'이라 하는데 도대체 '평화'란 무엇이요?"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당신에게 내가 먼저 묻겠소. 공장에서 일하다 해고된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야 물론 복직이겠죠." "그럼 평생 농사만 짓고 사는 사람이 미군 때문에 땅을 빼앗긴다면, 이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은 무엇이겠소?" "두말하면 잔소리요. 바로 땅을 지키는 것이겠죠." "그럼 이주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요?" "그건 아마 강제추방 당하지 않고 안정되게 일하는 것이겠죠." "개발 때문에 자연이 파괴될 때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요?" "물론 생명이겠죠. 아따, 이제 그만 물어봐요. 내가 당신에게 물어본 것은 평화가 무엇이냐지, 이런 시시한 농담 따먹기 하자고 한 것은 아니요."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우리가 지난 겨울부터 전국을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가는 곳곳, 열심히 일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도처에 널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람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디 한곳 성한데 없이 할퀴고, 끊어지고 파헤쳐진 자연은, 마치 힘센 자들에 의해 힘없는 여성이 강간을 당한 모습과 같았습니다. 생동하는 대지는 이미 영양분이 상실되어 말라버린 기아 난민 같기도 했습니다. 참담함으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을 느꼈지요. 자본과 권력의 힘 때문에 곳곳이 썩고 병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가르는 자본의 접경에서 점점 커지는 인간의 탐욕과 무관심 때문에 절벽을 느꼈지요.
그러나 오직 살아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희망 없는 희망' 이라는 각각의 현장을 오가며 변방의 새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힘없는 이들과 함께 부당함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들은 누가 알아주든지 말든지 그저 자신의 신념에 따라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드러나지도 않고, 명예도 없고, 변변한 집 한 채 없이 살아오며 얼굴은 지쳐있고, 행세도 남루하고.... 누가 봐도 요즘 잘 나가는 주류세대가 아닌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열정이 넘치던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길을 걸어오며 이미 몸은 병들어 있고, 생활은 지쳐있고, 고단한 삶의 무게로 사사로운 취미 하나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우직한 바보들이 없었다면 이 자본주의 사회는 그 모순으로 인해 어쩌면 폭발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이런 사람들 때문에 이 병든 사회가 이 정도라도 유지되는 것 같아 화도 나고 슬프기도 했지만, 그러나 소나무 같은 이들은 앞으로도 그 길을 벗어나지 않고 지금처럼 살아갈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가난한 혁명가, 폭력의 놀음이 역겨워 화려한 데뷔를 거부한 가난한 시인들처럼, 이들은 반평화의 현장과 삶을 바꾸는 소신이 비록 싸구려 인생으로 흘러가지만, 더 큰 물질적 소유를 원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고 그만큼 실천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 길을 그들과 함께 비는 마음으로 갈 뿐입니다.
길 위에서 깨달은 평화란 거창하고 세련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것, 부당한 것이 본래대로 회복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고 회복을 위해서는 팽팽한 긴장관계가 형성되어도 이를 헤쳐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척박한 한반도, 빈곤과 폭력과 개발이 멈추지 않는 아시아에서 자연과 인간의 삶을 복원하려는 인간의 투쟁 없이 온전한 평화란 쉽게 우리 앞에 찾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두희 님은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단원입니다.
- 2551호
- 오두희
- 2004-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