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화제 기간 동안 한 저시력 장애인이 자막 크기를 장애인도 볼 수 있도록 크게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했다. 인권영화제라면서 장애인의 영화 관람을 위해 왜 노력하지 않느냐는 것이 항의의 요지였다. 영화제의 열악함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지만 그에게는 '궁색한 변명'일 뿐. 그의 요청은 '인권'영화제라면 귀담아 들어야 할 고언이었다. 영화제 초기, 표현의 자유를 위해 정부와 직접 부딪히며 싸워야 했던 인권영화제는 이제 또 다른 영역을 확보하라는 인권적 요청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보는'것이 가능한가?" "사운드도 없이 제대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가?" 인권영화제는 비장애인들의 판에 박힌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주위의 장애인들과 장애인영화제에 자문을 구하면서 그들도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소리를 보고 그림을 듣고' 시·청각장애인들이 영화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말이 없는 장면에서 해설해 주는 소리가 필요하고, 청각장애인들에겐 그림을 설명하는 자막이 필요한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더빙과 장면해설을 곁들인 영화는 모두 4편이며 15편의 한국영화 중 8편이 우리말 자막이 곁들여져 상영된다. 더빙된 작품은 개막작 <아나의 아이들>과 장애아동들의 이야기 <나의 혈육>. 더빙된 성우의 목소리와 장면해설은 FM수신기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에게만 전달된다. 점자해설책자를 발간하고 개·폐막식에 수화통역을 준비중이다.
지체장애인들의 극장 접근도 고려 대상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서울아트시네마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에겐 곤혹스러운 장소임을 먼저 밝힌다. 가장 가까운 안국 역에 아직 리프트와 엘리베이터가 없다. 또한 대부분의 극장은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좌석이 없어 계단 참에서 보는 실정이다. 인권영화제가 개최되는 두 극장 모두 마찬가지이다. 인권영화제가 장애인들과 함께 당국에 요청해야 할 부분인 것.
장애인 관람 접근권을 위한 올해의 준비는 참으로 빈약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난한 재정, 부족한 일손'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비장애인 중심의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 '눈'과 '귀'에 얽매이지 않는 인권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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