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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 최혜정의 인권이야기 ◑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움직이려해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비명과 다급한 움직임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하며 발을 동동구르는 일뿐이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열린 시민마당에서 한 노동자가 "노동탄압 중단"을 외치며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동료들이 서둘러 불길을 잡았지만, 순식간에 몸을 감싼 불길은 따뜻한 미소의 택시노동자 조경식(43)씨를 불에 검게 그을린 참혹한 모습으로 바꿔놓았다.

숨을 헐떡이면서 신음하는 그의 옆에서 동료들은 흐느꼈다. 현재 조 씨는 전신 49% 3도 화상을 입고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다.

조 씨는 경력 7년차의 중견 택시기사다. 반쯤 탄 조 씨의 가방에서 나온 월급명세서에는 기본급과 각종 수당을 합쳐 110여 만원이 급여총액으로 찍혀있었다. 하루 12시간, 주7일 근무의 대가이다. 지난해 교통개발연구원의 조사를 보면, 법인택시 운전자의 월소득은 113만원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기준인 4인 가족 102만원보다는 많지만, 준 극빈층 수준인 122만원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택시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해 정부가 지난 1995년부터 택시회사의 부가세 50%를 감면 해주고 있지만, 이 경감분이 '언제 어떻게' 사용됐는지 알기 어렵다. 이 금액이 5천억 원에 이른다. 사업주의 불법경영과 부당노동행위에 맞서는 노동자들에게, 대부분의 회사는 '해고'로 답한다. 중앙노동위에서 계류 중인 구제신청의 30%가 택시노동자 관련 사안이다. 게다가 한번 해고를 당하면 다시는 택시회사에 발을 붙일 수 없다. 사업주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도는 '블랙 리스트' 탓이다.

조 씨가 몸담았던 사업장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업체'였다. 조 씨는 분신하기 며칠 전, 동료에게 "나 하나 없어지면 좀 달라질까"하며 말을 흐렸다고 한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후 3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몸을 불태우며 절규한다. 노동법은 많은 현장에서 무시되고, 노동자들은 죽음을 배수진으로 치고 싸운다. 정치인들이 '민생체험'에 나설 때마다 '들러리'로 '활용'하는 택시노동자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막상 서민들의 '입노릇'을 하는 택시기사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많지 않다. 지난 1984년 이후 30여 명이 넘는 택시노동자들이 사업주의 불법경영과 정부의 무관심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택시기사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은 잠시 접어두자. 이제는 이들에게 '인간답게 생존할 수 있는 권리'를 돌려줄 때다.

◎최혜정 님은 한겨레21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