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보할 것 없이 각종 언론들이 너도나도 '이웃', '희망', '나눔'을 이야기한다. 한겨레, 오마이뉴스는 말할 것 없고, '분배'나 '평등'을 요구하면 빨간딱지부터 붙이던 조선일보까지 '결식아동', '희망 공부방'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기업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표방해 온 중앙일보도 '가난 대물림을 끊어주자'고 외친다. 실업, 불안정한 일자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삶이 가난에 침식당하는 이 때, 언론이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언론들이 권장하는 '빈곤 탈출'의 해법, 그 '나눔'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거다.
캠페인의 재원부터 이야기하자. 오마이뉴스의 '청소년가장의 희망일기', 조선일보의 '희망 공부방'은 모두 <삼성>이 지원한다. 중앙일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 최고의 기업이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진실을 모르는 소리다. 경영권과 더불어 970억 원이라는 재산을 편법으로 자식에게 상속하는 범죄기업 <삼성>은 캠페인을 지원하면서, 감세 혜택을 받고 이미지 표백까지,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다. 하지만 그건 자본의 첨탑을 더 높이 쌓으며, 가난한 사람을 주변인으로 만드는 '빈곤 영속화' 프로젝트다.
더 큰 문제는 언론들이 보통 사람들의 '나눔'을 권유하는 사이, 국가가 응당 져야 할 책임이 우리의 시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습기와 곰팡이로 가득 찬 지하셋방에 사는 장애인 모녀,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 등 어려운 이들을 돕는 연대의 정신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녀야 할 덕목이다. 그러나 빈곤이 빠듯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봉사'와 '나눔'으로 극복될 문제인가. 이것은 인권의 문제, 국가 책임의 영역이다. 돈이 없어 비인간적인 주거 환경에 살 수밖에 없는 것, 주위의 도움 없인 끼니를 거를 수밖에 없는 것은 인권침해다.정부는 '인간다운 생활권',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헌법과 '주거권', '먹을 권리', '건강권' 등을 보장하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가입에 따른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고문을 당하면 그 가해자와 정부 책임자를 법정에 세운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국가가 직접적인 행위를 통해 인권을 빼앗지 않았다 하더라도, 국민이 인권을 평등하게 누리도록 보장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실현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빈곤으로 인한 구체적인 인권침해에 대해 관계 부처의 책임을 묻자. 필요하다면, 법정에 세우자. 또 돈 놓고 돈 먹는 사람들, 부를 세습하는 사람들에게선 그에 걸 맞는 세금을 걷어 부를 나누자.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은 더 이상 '나눔'의 수혜자가 아닌, 자주적인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자. '빈곤 탈출'은 바로 여기서 시작될 수 있다.
- 2587호
- 200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