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기자의 눈> 되풀이되는 군의문사, '진상규명'은 요원한가

달랠 길 없는 유가족들의 분노…"과거청산에 포함시켜야"

경기도 포천시 주둔 보병제6군단은 숱한 군의문사 사건을 양산해 온 것으로 악명이 높다. 유난히 하늘이 맑고 높던 14일, 완만하게 굴곡진 푸른 산에 둘러싸인 이곳에서 군의문사 유가족 한 명이 땅바닥을 뒹굴며 목을 놓아 통곡을 한다. 검은 양복 차림의 몇몇 군 관계자들은 뻣뻣이 선 채로 그녀를 내려보고, 정문 앞에 놓인 '정지(STOP)' 표시판은 그녀를 가로막고 있다.

군폭력근절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가족협의회(아래 군가협) 등 3개의 군의문사 관련 단체들을 비롯한 유가족 20여명은 "군대에서 죽으면 수사도 하기 전에 무조건 자살이냐"고 외치며 다시 길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심정을 토로했다.

지난 90년 군의문사로 아들을 잃은 군가협 윤옥순 회장(고 홍안표 씨 유가족)은 "군은 왜 사건만 발생하면 나 몰라라 하냐"며 울분을 토했다. 아들이 군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지 20일 뒤, 윤 회장의 남편은 병을 얻어 2년간 병상에 누워 있다가 결국 아들의 뒤를 좇았다.

서영진 씨(고 서유성 씨 유가족)는 "군은 군내에서 자살로 판명된 사건의 원인을 무조건 개인의 이력으로 돌리려 하는데, 왜 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군에 가서 죽겠냐"며, 죽음을 둘러싼 의혹들을 해소하지 않은 채 책임전가에 급급한 군의 태도를 비판했다. 서 씨는 심지어 "최근 한 공군이 사망하자, 해당 부대의 대령이 부모를 앞에 두고 '이 아이는 원래 죽을 아이였는데 자신의 앞길을 막았다'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는 수준"이라며 기가 막혀했다.

이들은 의문사를 자살로 포장하는 것뿐 아니라 설령 군의문사가 자살이었다고 하더라도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군 내부의 획일적이고 폭력적인 잔재들을 개선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서 씨는 "체력이나 적응 속도가 개인별로 다를 수밖에 없는데 개인편차를 인정하지 않고 왜 한 가지 기준만을 제시하냐"며 고질적인 군 문화의 폐해를 비판했다.

사망현장과 증거품의 훼손변형, 허위증언 종용 등 은폐조작 일색인 군의문사 사건의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찾을 수 있을까. 풀릴 길 없는 울분과 통한의 심정을 붙들어 매고 유가족들은 군수사체계 개선과 과거청산의 하나로 진상규명을 주장해왔지만, 정치권은 그들의 목소리를 계속 외면해 오고 있다. 지난 13일 열린우리당이 내놓은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입법안(아래 입법안)은 군의문사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어 유가족들의 요구를 또다시 묵살했다.

유가족들의 애끓는 외침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등병의 편지'가 흘러나왔고, 정문 앞 중앙에서는 목을 맨 군인을 재현한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목을 축 늘어뜨린 군복 너머에는 소복을 입은 유가족들이 아른거렸다. 그들의 흐느낌은 이처럼 현재 진행형이다.

이후 군가협 등 유가족들은 한나라당 옛 당사 앞에서 입법안에 군의문사를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며 노숙농성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