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는 뜻하지 않았던, 그러나 예견된 빅브라더와의 끔찍한 만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번 수능부정 사건에서 경찰이 보인 무차별적 수사는 첨단 과학기술과 그들의 일천한 인권감수성이 조화를 이룬 경악스런 결과이다. 수능시험 당일 전송된 2억 건이 넘는 문자메시지에 대해 경찰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이중 5이하의 숫자로 된 24만 여건을 이동통신사로부터 넘겨받았다고 한다. 경찰이 29일 수능부정 행위가 의심된다고 발표한 5백 여건의 문자메시지는 이 24만 여건의 문자메시지에서 추려낸 것이다.
2억 여건! 문자메시지 한 건당 한 사람으로 셈할 수는 없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이 일시에 범죄혐의자로 취급된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법원은 경찰에게 5이하의 문자메시지를 넘겨주라고 영장을 발부했고, 이에 따라 경찰은 영장을 발부받은 정당한 법집행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능'을 둘러싼 온 국민의 뜨거운 이목에 '별 것 없을 것같은 숫자 몇 개 뒤져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2억 여건쯤이야!'하고?
경찰의 편의주의적 발상도 문제이지만 법원이 어떻게 이런 무작위 수사를 허용할 수 있는 것인지 허탈할 뿐이다. 인권보호를 위해 채택된 영장주의를 법원 스스로가 무색하게 만든 어이없는 사건이다. 게다가 이동통신사는 이용자의 동의도 없이 문자메시지를 수일에서 수십일간 보관해오다 이번 수능 사건에서 들통이 났다. 법적 근거도 없이 그들이 그 많은 개인의 문자메시지를 지금까지 보관해왔고, 수사당국은 '영장'이라는 합법으로 개인의 정보를 조사해왔다는 말이다. 인권감수성은 제쳐두고, 이들의 인권불감증에 놀랄 뿐이다.
기술을 발판으로 삼아 상황의 심각성을 무기로, 정의를 목적으로 범죄소탕에 나서는 빅브라더에 의해 무시되는 기본적인 권리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마땅히 통신비밀보호법 등 관련 법규에 대한 철저한 정비가 뒤따라야겠지만, 합법으로 자행된 이번 수능부정 사건 수사를 겪으며 우리는 다시 한번 '인권의 눈'이 절실함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