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글을 읽다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란 문구를 보고, 아! 국가가 개인/집단의 자유를 증진시키기위해 뭔가 역할을 하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국가’라는 존재가 워낙 개인/집단의 자유를 훼손하고 침해해온 존재이다 보니, 새로운 국가공동체에 대한 상상조차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15년 4월 세월호 집회에 등장한 차벽을 보면서, 2008년 촛불집회 차벽이 ‘데칼코마니’처럼 보였습니다. 당시 시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시민에게 있다”는 말을 참 많이도 외쳤습니다. 지금 시민들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폐지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두 주장이 데칼코마니처럼 다가옵니다. “더 이상 이런 사회에서는 살 수 없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외침으로!!
시민이 차벽을 마주하는 방식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폐지를 요구하며 청와대로 가려 했으나 보이는 것은 ‘차벽’ ‘캡사이신’ ‘경찰병력’ ‘물대포’ 등. 현재 시민이 국가를 마주하는 방식입니다. ‘차벽’ ‘캡사이신’ ‘경찰병력’ ‘물대포’에 마주하는 시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경찰에게 따졌고 불복종으로 맞섰습니다. 4.11/4.16/4.18/5.1~2 세월호 집회에서 보여준 시민 항의는 국가와 나의 관계를 바꾸려는 역동적인 목소리와 몸짓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경찰은 듣거나 말거나 하지만. 이후 경찰은 언론, 국회의 질타를 들으면서도, 차벽이 질서유지선이라는 등, 법이 없으면 만들겠다는 등 줄곧 거짓의 얼굴로 시민을 대하고 있습니다. 법을 어기고 거짓이 드러나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국가를 향해 시민들은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불복종을 선택했습니다. 시민들은 집회를 방해하는 경찰력을 향해 함성을 지르고 차벽으로 막히면 돌아가고 그 자리에 앉아 농성하고…….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시민 항의,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모이면서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서구 사회에는 정부에 의해 자신의 주권이 침해당했다고 여길 때 시민이 선택하는 적극적인 저항 방법으로 ‘시민불복종’이 있고, 이는 ‘시민저항권’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국가가 권력을 남용해 시민을 공격하면, 시민들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자기방어를 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한겨레21 2015.5.5 1059호 여섯 겹 차벽 ‘인권치매’ 경찰)
세계인권선언은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저항권의 행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부당한 법률과 명령에 불복종하는 저항권의 행사를 국제법상 권리이자 의무로까지 승격시킨 바 있습니다. 부도덕한 정권과 국가를 바꾸려는 시민행동은 저항권의 발현입니다. 인권옹호자 선언 12조 1항은 “모든 이들은 개별적으로 공동으로,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침해에 저항하는 평화적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하여 평화적 저항권을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인권침해감시단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나요?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희는 ‘시민항의’를 촉진하는 사람들입니다. 경찰은 적법하고 인권침해 없이 공권력을 집행한다고 주장하지만, 경찰이 적극적으로 집회시위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한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에 의한 인권침해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 현장에서 경찰력을 견제하는 역할은 시민 우리 모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활동은 그 자체로 누구에게나 개방되고 보장받아야 할 인권으로, 유엔 역시 “유엔 인권옹호자 선언”을 통해 인권옹호 활동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유엔 ‘인권옹호자 선언문’의 핵심적인 정신은, ‘모든 사람은 인권의 증진, 보호, 실현을 위해 노력할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하면서, 이를 위해 △평화적 회합 또는 집회 △비정부기구, 협회, 또는 단체의 결성, 가입 및 참여 △비정부 또는 정부 간 기구와 의견 교환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권옹호활동은 검경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 권영국 변호사님의 경우 집회현장에서 공무집행방해죄로 연행되어 영장청구까지 하는 등 감시단을 다양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또한 몇몇 인권활동가들도 세월호 집회와 관련해서 경찰로부터 소환장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도 소환장을 받아 곧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대법원까지 무죄판결을 받았건만 이를 따르지 않는 검경의 작태는 참 문제가 있습니다.
경찰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고발 지속될 때 변화의 가능성 열려
집회의 권리를 침해/방해하는 경찰력 행사에 대한 항의와 사회적 비판/고발이 지속해서 이루어져야 경찰을 통제할 수 있고 집회의 자유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집회를 관리하는 경찰의 모습도 바뀔 수 있습니다. 집회에서 경찰력 행사가 법과 인권의 시각에서 볼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항의하고 감시하는 활동은 이후 경찰력에 대한 비판과 고발로 이어집니다. 이 과정은 집회의 자유 실태와 경찰 대응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과 분석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러한 기록과 분석의 내용을 축적하여 전반적인 경찰력 행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며 공동대응을 위한 자료로 소송, 진정 등 후속 작업을 도모할 수 있는 기초적인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법, 시행령, 지침 등 제도가 문제라면 국회라는 공간을 통해 입법운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캡사이신 등 장비사용을 지금처럼 추상적으로 규정하거나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두는 것이 아니라 엄격하게 사용을 규제하도록 하는 방안도 가능합니다. 집시법을 전면개정해서 ‘차벽’ 자체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차 벽으로 쓰이는 경찰버스를 당장에라도 압수해서 교통 사각지대에 투입하여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이동권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과정이 쌓이고 쌓이면서 경찰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경찰을 향한 시민감시의 힘이, 국가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