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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즐거운 물구나무] 공원 의자의 팔걸이를 없애자

집에서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다, 다리가 아파 의자를 찾게 되었다. 휴식 공간으로 요즘 부쩍 늘어난 근린공원을 보면서 한국사회의 변화를 실감하던 중, 의자 가운데 예전에는 없던 팔걸이를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노숙인과 함께 운동해 온 어떤 활동가의 말이 떠올랐다. 서울시나 구청은 노숙인의 거리노숙을 막기 위해 공원에 있는 의자에 팔걸이를 속속 설치하고 있다는 것. 당시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는 그냥 스쳐지나갔는데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노숙인에 대한 냉담과 적대감에 숨이 막혔다.

공원 내 의자는 운동으로 지친 사람이 누워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갈 곳 없는 노숙인이 잠시 몸을 의탁할 수 있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그러나 팔걸이로 인해 의자는 단지 앉을 수 있을 뿐 그 외 다른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팔걸이 의자는 휴식처를 공유하던 사람간의 교감과 사회적 연대를 사라지게 하고, 노숙인을 시회로부터 격리시키려는 '의도'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팔걸이 의자는 미국의 흑백분리 정책처럼 노숙인과 비노숙인을 공간적으로 분리시키는 인위적인 상징처럼 느껴진다.

아이엠에프 이후 지금껏 한국사회에서 노숙인에 대한 인식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여전히 노숙인을 사회안전에 위해한 집단으로 간주해 거대시설을 지어놓고 그 안에 가두든지, 눈에 보이지 않는 도시 한구석에 처박아 놓는다. 지난 1월 서울역에서 숨진 한 노숙인의 경우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받았더라면, 생명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서울역이라는 공공성이 가장 높은 공간에서조차 노숙인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마땅히 사회적 공분이 확산됐어야 함에도 한국사회가 노숙인의 죽음을 용인한 것은 결국 노숙인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장애인이동권투쟁의 결과,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기 시작해 장애인은 물론 노인, 아동, 임산부 등이 그 시설을 향유하고 있다.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처럼 공원의 의자는 휴식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공유물로써 점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공간을 통한 사회적 연대는 공원의자의 팔걸이를 없애는 일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