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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즐거운 물구나무] '갇힌 자유'를 뛰어 넘자!

집회장소와 시간을 미리 선점해 허위로 집회를 신고해 버리는 '유령집회', 주한 외국대사관 100미터 내에서 시위를 할 수 없어 등장한 '1인 시위'. 이 모두 한국사회에서 나타난 변형된 집회시위의 얼굴이다. 여기에 또 하나를 덧붙이자면, 집회장소를 경찰차로 포위하는 '원천봉쇄'가 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 동원된 경찰차

▲ 지난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 동원된 경찰차



간혹 버스를 타고 광화문 열린시민 광장을 지나다보면, 문화관광부 차도부터 한국일보사까지 둥글게 둘러싼 경찰차를 볼 수 있다. 더러는 인도까지 경찰이 상주해, 시민의 입장에서는 보행조차 힘들다. 작년 연말 여의도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을 할 때도 언제나 경찰차가 시위대를 애워 싸 집회참여자의 외침이 빌딩 속에 갇혀 공허한 메아리로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서도 경찰은 광화문 일대를 두 겹의 경찰차로 겹겹이 포위해버렸다. 한국일보사부터 미대사관을 거쳐 동아일보사까지 심지어 도로건너편 세종문화회관에 이르는 공공도로가 경찰에 의해 무단 점유되었다. 집회 본래의 의의와 기능을 상실시키는 원천봉쇄의 변형된 형태라고나 할까?

집회시위는 기본적으로 공동체 내 의사소통을 위한 목적이자 수단이다. 또한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으로 국가는 당연히 집회시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집회시위를 통해 사람들은 정보를 교환할 수 있고, 다양한 방식을 통해 견해를 표현, 소통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집단적인 의사형성이 가능하며, 여론을 만들어 가고,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한다. 더욱이 자본이 거대언론을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은 집회시위를 통해 사람과 직접적인 소통을 이룬다. 그러나 현재 경찰은 집회시위 참여자를 경찰차로 에워싸 '보호'가 아닌 '격리'를 시키고 있다. 집회시위자를 가두어 사람과 소통할 수 없게 차단시킨다. 한마디로 집회시위자를 '도심의 섬'으로 만든다.

광화문 일대가 경찰차에 의해 점거당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집회.

▲ 광화문 일대가 경찰차에 의해 점거당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집회.



노동절 집회에서 종로 일대는 광화문 사거리부터 보신각까지 집회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으로 나뉘었다. 나는 다양한 사람의 견해를 듣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경찰차 벽 너머에 있는 사람과는 소통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부터 집회시위가 허락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잔치로 끝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집회시위를 공간적으로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은 경찰이지만, 그 안에서 집회참여자 역시 심리적으로 '강요된 질서'를 내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허락된 공간은 집회시위 참여자를 자족적인 공간에 머무르게 한다. 감히 벽 너머를 넘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인냥 소통의 벽을 닫아버린다. 어떤 시인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했다. 자족의 공간을 넘어, 갇힌 자유를 찢고, 경계에 꽃을 피우기 위해 우리에게 내재된 벽을 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