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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시청 앞 광장에서 내쫓긴 열사들

서울시, "문화행사 아니다"…열사추모제 불허

서울시(시장 이명박)가 6월 11일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열사추모제를 불허해 물의를 빚고 있다. 서울시는 앞으로도 "일반적인 의미의 문화활동"만 허가한다는 방침이어서, 지난해 서울시가 시청 앞 광장에 잔디를 깔아 '시청광장'을 조성하면서 제기됐던 '시청 앞 집회 원천봉쇄 우려'가 현실화 됐다.

지난 5월 20일 서울시는 광장 사용허가를 신청한 제16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범국민추모제 행사위원회(아래 행사위)에 보낸 회신을 통해 "(조례에 의하면) 문화활동이라 함은 불특정 일반시민의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일반적인 의미의 문화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됨에 따라서 조례에서 정한 서울광장 조성목적이나, 광장환경 관리측면에서 서울광장 행사로는 부적합하다고 판단"된다며 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지난해 5월 20일 제정된 '서울특별시서울광장의사용및관리에관한조례'(아래 조례)는 광장조성의 목적을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제1조)으로 규정하고 △시청 앞 광장을 사용하려면 사용일 60일 전부터 7일 전까지 광장사용허가신청서를 제출(제4조)해야 하고 △광장의 조성목적에 위배되는 경우 시장은 광장사용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으며(제5조) △시간당 1제곱미터 사용료로 10원을 내야하고(제9조) △광장사용으로 인해 손상이 발생할 경우 시장이 사용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4일 열린 기자회견

▲ 24일 열린 기자회견



서울시, "열사추모제는 광장목적에 부적합"

24일 행사위원회는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열사추모와 민주주의 염원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소중한 뜻이 담긴 추모문화제 행사자체를 불허하는 서울시의 처사에 대하여 도저히 이해할 수도, 수용할 수도 없"다며 "이명박 서울시장이 (추모문화제를) 허용하는 그날까지 단호히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연합 노수희 공동의장은 "박정희 독재정권은 물론 전두환·노태우·김영삼에 빌붙어 살아온 자들이 열사 추모제를 못하게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폭거요 탄압"이라며 "추모제를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장소를 옮기지 말고)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박, 특정 단체 '밀어주기' 나서나?

서울시가 시청 앞 광장 추모제를 불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2004년 6월 천주교인권위 주최의 군·경 의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 △2004년 11월 칼(KAL) 858기 실종사건 17주기 추모제 등 여러 형태의 추모제가 시민들의 참여로 광장에서 열렸던 것. 따라서 이번 불허 통보는, 서울시가 앞으로는 이와 비슷한 성격의 행사를 불허할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서울시 총무과 청사운영팀 박근대 씨는 불허 이유에 대해 "지금까지 그래왔다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며 "서울광장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하고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데 추모제는 광장사용취지와 반하기 때문에 불허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심재옥 서울시의원(민주노동당)이 서울시에 요구해서 받아낸 '서울시 광장형 시설 운영 실태(시청앞광장)'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는 △2004년 6월 '대한민국 안보와 경제살리기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한미동맹 강화와 경제살리기 위한 6.25 대각성 비상구국기도회 △같은해 8월 독립신문(대표 신혜식)이 주최한 '8.15행사 기념연설 및 국민축제' △같은해 10월 열린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기도회 및 국민대회' △2005년 3월 서울시 의회가 주최한 '수도분할저지 범시민궐기대회' 등은 허가한 바 있어 특정 목적의 행사에는 시청 앞 광장을 쉽게 내주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게다가 서울시가 뒤늦게 추모제 불허를 통보해 행사 진행을 방해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행사위원회는 시청광장 사용허가 신청서를 조례에 규정된 행사 60일 전인 지난 4월 12일 서울시에 제출했으나, 서울시는 이에 대한 최초 회신을 5월 7일에야 보냈고 이마저도 "광장조성 목적상 서울광장 사용허가가 곤란"하다는 식의 추상적인 답변만 늘어놨다. 이에 행사위원회는 5월 10일 '회신에 대한 이의 공개 질의서'를 서울시에 보낸데 이어 5월 16일 '회신에 대한 이의 신청'을 냈다. 그제서야 서울시는 추모제가 '일반적인 의미의 문화활동'이 아니라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은 것.

24일 열린 기자회견

▲ 24일 열린 기자회견



"조례가 집회·시위 자유 억누르다니"

하지만 추모제가 문화활동이냐 아니냐는 논쟁은 중요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근본적으로 시청 앞 광장은 공공장소인데도 집회 시 경찰에 대한 집회신고와 별도로 서울시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 조례가 제정되기 직전인 지난해 4월 26일 열린 공개토론회에서도 이런 점은 이미 지적됐다. 당시 서울시 관계자가 "조례에 의해 제한되는 행사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밝혔고 윤학권 서울시의원도 "사용 허가 제도는 실질적으로 신고 제도처럼 쓰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조례가 광장사용 허가권을 시장에게 쥐어 줘, 일개 자치단체의 조례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권리를 제한하게 될 것이라며 조례 제정을 완강하게 반대한 바 있다. 이번 사태는 당시 우려가 현실화된 것.

심 의원은 "(이번 불허통보는) 서울시가 자기네 입맛에 맞는 행사만 허락해 광장을 사유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며 "시민들의 자유로운 공간이 되어야 할 시청 앞 광장이 서울시에만 자유로운 공간이 됐다"고 비꼬았다. 또 "광장 조성 목적이 시민에게 광장을 돌려주는 것이라면 어떤 목적의 행사든 자유롭게 열리도록 보장해야 한다"며 "서울시는 일정이 충돌하지 않도록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장만 마련하면 된다"며 조례 폐기를 주장했다.

한편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은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시장면담을 요구했으나 시청 정문을 막은 경찰에 의해 좌절됐다. 행사위원회는 서울시의 불허통보에 좌절하지 않고 시청 앞 광장에서 행사를 치를 계획이다. 이번주 안에 서울시가 광장 사용을 허가하지 않는다면 다음주에는 노숙농성투쟁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서울시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서울시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잔디가 깔린 시청 앞 광장

▲ 잔디가 깔린 시청 앞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