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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2002년 미군장갑차 사건 진상 은폐·왜곡됐다"

정보공개된 사건기록 분석결과 발표

지난 2002년 발생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의 진상이 검찰에 의해 은폐·왜곡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0일 두 여중생의 아버지 신현수(고 신효순의 부친), 심수보(고 심미선의 부친) 씨와 홍근수 목사(전 여중생 범대위 상임공동대표)(아래 정보공개 청구인들)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고 장갑차 운전병은 두 여중생을 볼 수 있었으며, 운전병과 관제병 사이에 통신 장애가 없었다"고 폭로했다. 이는 당시 사고 원인으로 발표된 사실과 달라, 은폐·왜곡된 사실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 당시 미2사단장이 선정한 배심원단은 관제병 니노 병장에 대해 "관제병으로서의 의무를 다했고 시간이 짧아 사고가 불가피했다"는 이유로, 운전병 워커 병장에 대해 "오른쪽 주시 임무가 있는 관제병으로부터 사고지점에 여중생이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같은해 11월 20일과 22일 각각 무죄 평결한 바 있어 재심 진행 여부도 주목된다.

이번 발표는 정보공개 청구인들이 지난 6월 4일 의정부경찰서와 의정부지검으로부터 △의정부지검 수사기록 △미군범죄수사대(CID) 수사자료 △피의자·목격자의 진술서 등 1000여 쪽에 달하는 관련 수사기록을 넘겨받아 검토한 결과 이뤄졌다. 이에 앞서 지난달 27일 대법원은 수사기록 공개청구 소송에서 원고 최종 승소 판결을 한 바 있다.


운전병은 무엇을 보았나?

지난 2002년 8월 5일 의정부지청은 "운전병은 장갑차 중심부에 설치되어 있는 기기(가설받침대) 때문에 우측 12시∼2시 방향을 볼 수 없"었고 "관제병이 여중생들을 약 10∼15미터 전방에서 뒤늦게 발견하여, 통신외에 사고 방지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었"으나 "통신 장비의 잡음 등으로 인해 운전병이 이를 듣지 못한 것이 사고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해 9월 3일 의정부지청이 미 2사단에 보낸 수사결과 자료로 이번에 평통사가 공개한 '미 부교장갑차 대한민국 여중생 치사사건 수사결과에 따른 법률적 검토 의견'(아래 '9월 3일자 검찰의견서')에 따르면 "사고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바로는 운전병이 우로굽이 도로를 돈 직후 사고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거리는 최소 30m에서 최대 35m이고, 운전병의 사각지대인 우측 전방 약 2.5m에서 21.6m를 벗어난 지점에서 걷고 있던 피해 여중생들을 충분히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운전병이 우측 주시 의무는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


"통신장애 주장은 핑계"

또 운전병과 관제병 사이에 통신 장애가 있었다는 주장에도 의혹이 제기됐다. 같은해 8월 5일 의정부지청은 △헬멧 장치 중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운전병과 관제병 사이 통신용 증폭기의 연결부분이 불안전했으며 △먼지 및 습기가 차 통신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었는데도 운전병과 관제병이 이를 그대로 착용한 것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운전병의 6월 19일 진술은 "출발 이전에 최소한 세 번 통신장비를 점검해 내부 통신을 교신했고 외부통신도 점검했다. 모든 것은 좋았고 잘 작동했다"는 것. 또 통신정비병 듀란은 6월 19일 진술에서 "나는 그들이 이동하기 전에 통신장비를 점검하기 위해 갔다. 이후 다른 차량 무전기와 맞춰 봤는데 작동에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진술은 7월 27일 한국 검찰이 듀란을 소환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미 들었던 것으로 밝혀져, 당시 검찰이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심지어 의정부지청 노시탁 검사보는 소환조사 결과를 적은 8월 1일 수사보고에서 "사고 부교장갑차가 사고 전에 운행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통신장비에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지만 8월 5일 발표된 수사보고서에서는 이런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것.

다만 관제병과 운전병은 사고 순간에만 통신이 되지 않았다고 7월 2일 CID 조사에서 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정보공개 청구인들은 "관제병이 손만 뻗어도 운전병에게 경고를 보낼 수 있으므로 통신 장애로 사고가 났다는 것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6월 20일자 CID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운전병과 관제병 사이의 거리는 82.8cm에 불과하며 6월 19일 진술에서 관제병은 "관제병 자리에서 운전병에게 손을 뻗어 알리는 것이 가능했는가"라는 물음에 "그렇다. 하지만 운전병의 주의력을 방해하고 핸들 조작이 민감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답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보공개 청구인들은 "관제병이 손만 뻗어도 운전병에게 경고 신호를 보낼 수 있으므로 통신 장애로 사고가 났다는 것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시끄러우면 움직일 줄 알았다"

게다가 운전병은 6월 19일 진술에서 "나는 (반대쪽 차로에서 다가오던) 브래들리(장갑차)의 옆면과 운전병, 장갑차의 코너를 더 주시하느라고 운전병과 관제병, 중대장이 보낸 정지 신호를 못봤다"고 진술했으나 맞은편 전차의 6월 13일 운전병 루시 카일은 "차량을 멈추게 하려고 운전석의 해치 밖으로 나의 손을 들었다"고 엇갈리게 진술했다.

정보공개 청구인들은 "통신도 무시하고 맞은 편 장갑차 탑승자의 경고도 무시한 것은 두 여중생들이 알아서 비키겠거니 하는 안이한 사고 때문이거나 아니면 교행을 위해 칠 줄 뻔히 알면서도 무리한 운행을 했음을 말해 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6월 19일 관제병은 "(여중생이) 그들 뒤로 시끄러운 차량이 지나가면 움직일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해 여중생들을 발견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맞은편 장갑차 대신?

또 운전병은 "나는 맞은 편에서 오는 버스, 트럭 등 몇 대의 차를 피하기 위해…갓길 쪽으로 운행했다.…브래들리를 앞질러 오던 민간차량과 뒤의 브래들리 사이에 간격이 있었다. 그래서 차를 중앙선 쪽으로 조금 몰았지만 곧 장갑차를 보게 되었다. 나는 갓길 쪽으로 차량을 몰면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도로 중앙과 브래들리를 주시했다"고 6월 19일 진술했다. 즉 도로 폭(3.3m)보다 차폭(3.67m)이 더 큰데도 맞은편 브래들리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두 여중생이 걸어가고 있던 갓길 쪽으로 장갑차를 몰았던 것.

한편 중대장 메이슨 대위의 직무유기 혐의도 지적됐다. 이번에 공개된 '9월 3일자 검찰의견서'에는 "(메이슨 대위가) 여중생들이 훈련대열이 통과하는 협소한 도로의 우측 가장자리를 이용하여 보행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으면 뒤따라오는 장갑차 대열에게 그와 같은 사정을 알려 주어 불행한 사고를 방지할 수 있도록 주의를 촉구하였어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한 사실은 인정되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보공개 청구인들은 11월 5일 검찰이 미2사단장에게 보낸 의견서에서 이 내용이 삭제됐다고 밝혔다. 또 "메이슨 대위를 기소하지 않고 내부 징계만 받도록 함으로써-실제로 가장 가벼운 징계인 경고처분만 받음-두 여중생 사건에서 나타난 지휘체계상의 책임을 은폐시키려는 주한미군의 의도에 한국 검찰이 협조해 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범국민운동 다시 시작된다

정보공개 청구인들은 △11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미 대통령의 사과 △담당 검사를 비롯한 관련자 징계 △미 정부의 수사·재판기록 전면공개 △사고 당시 중대장 이상 지휘책임자 기소·처벌 △한미소파 전면개정 등을 요구했다.

또 앞으로 미국 정부 및 주한미군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해 미국 측 수사·재판기록을 확보하고, 미국 현지에서의 사법적 대응방안을 모색하며, 후속대응 및 지속적 추모사업을 위한 상설기구를 결성하는 등 향후 활동을 국민운동방식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한편 기일을 하루 앞둔 오는 12일에는 '신효순 심미선 613 자주평화 촛불기념사업회(준)'가 주최하는 '故 심미선 신효순 3주기 추모 촛불대행진'이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