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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움틈] 스스로 미디어가 된 사람들

지난 5월 한국방송(KBS) 시청자 제작참여 프로그램인 '열린 채널'에 방영된 <외출 혹은 탈출>은 중증장애인인 연출자가 직접 출연하고 제작한 영상물로, 두려움과 위험을 넘어 집밖으로의 탈출을 시도한 자신의 경험과 일상을 통해 장애인이 겪는 문제와 고민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리를 제외하고 우리 문제를 논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라는 장애인 당사자주의 구호가 갖는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즉 미디어 안에서도 장애인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고, 권리를 요구할 때 보다 강력한 힘과 설득력을 갖게 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얼마 전 생긴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 Migrant Workers TV)은 네팔·방글라데시·몽골·독일·버마·중국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과 작업환경 그리고 자신들이 겪고 있는 한국정부의 인간사냥과 추방정책을 한국인들에게 직접 알리고, 한국 노동자와 연대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동안 주류미디어에서 동정의 대상이나 범법자·불법체류자로 그려져 온 이주노동자들이 이제 자신들의 언어로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2004년 미디액트 '찾아가는 미디어교육' 중 이주노동자 미디어교육

▲ 2004년 미디액트 '찾아가는 미디어교육' 중 이주노동자 미디어교육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의사소통과 정보 전달의 주요한 수단인 미디어에 접근하여, 미디어를 이용해 자기의 의견과 생각을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권리가 주어져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장애인과 이주노동자, 여성, 청소년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좀처럼 듣기 어려웠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사회구성원, 특히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소외계층이 미디어를 매개로 사회참여의 주체로 서는 자리가 조금씩 늘어나는 변화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퍼블릭액세스(시청자들이 직접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활동)의 제도화나 미디어교육의 활성화는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추동하는 주요한 요인이다. 성과 폭력이 난무하는 상업 미디어의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수용자들을 보호하고 예방하는 차원에서 1970년대 말에 시작된 미디어교육은 90년대 후반부터 미디어를 활용한 표현, 퍼블릭액세스 차원의 대안 미디어 활동으로 확장되면서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찾아가는 적극적인 미디어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디어와 수용자와의 관계 변화에 따라 미디어교육의 주요한 목표가 '비판적 읽기'와 '참여적 제작'이 되면서, 수용자들이 미디어에 의견을 개진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차원을 넘어 미디어 생산물의 제작자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소수자와 소외계층을 찾아가는 '아웃리치'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은 주류미디어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표현하고 소통하게 함으로써 사회 변화를 위한 교육 실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2003년 공부방 아이들과의 미디어교육을 시작으로 이주노동자·여성·장애인 미디어교육을 기획·운영하고 있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찾아가는 미디어교육' 역시 그러한 교육 실천의 하나이다.

지난해 명동성당에서 농성 투쟁 중이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한 이주노동자 미디어교육이나 핵폐기장 반대 투쟁이 한창이던 부안의 지역활동가와 교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육은 미디어교육을 통해 각 부문운동에서의 미디어운동 전략을 논의하고, 사회구성원의 커뮤니케이션 권리 실현을 통해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또 영상 중심의 매체들에서 점차 소외되어가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라디오 미디어교육은 어린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미디어에 쉽게 접근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주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에서 출발했다.

2004년 미디액트 '찾아가는 미디어교육' 중 이주노동자 미디어교육

▲ 2004년 미디액트 '찾아가는 미디어교육' 중 이주노동자 미디어교육



이처럼 주류미디어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거나 다루어지더라도 편견과 왜곡의 시선으로 담겨지는 소수자나 소외계층이, 주류미디어의 관점이나 왜곡된 시선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표현하고 소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장애인의 성·취업·이동권 문제는 비장애인에겐 낯선 일일 수밖에 없으며, 고작 30분밖에 주어지지 않는 점심시간과 노동조건에 대해 이주노동자 자신만큼 진정성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소에게 여물을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자신의 일상과 여성농민활동가로서의 고민을 담은 부여 여성농민에서부터 손으로 잡기 힘든 카메라를 휠체어에 묶어가면서 촬영하는 장애인, 주변의 산·들·바다의 소리와 이미지로 마을의 모습을 담아낸 계화도 아이들, 한달에 한두 번뿐인 휴일을 반납해가며 자신의 언어로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경험을 표현한 오산·마석·송우리의 이주노동자 등 올해에도 찾아가는 미디어교육은 미디어 불평등을 극복하고, 커뮤니케이션 권리 실현을 위한 교육을 실천 중이다. 물론 교육을 진행하면서 부딪치는 문제들, 이를테면 한국어에 서툰 이주노동자와의 의사소통,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기자재들, 교육을 기획·운영하는 교사와 활동가의 부족 등은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들이다.

소수자 미디어교육에 대한 공적 지원이나 실천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런 교육이 일회성에 그치거나 시혜적인 행사로 그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컴퓨터와 고가의 장비들, 일정한 기술과 지식, 시간의 투자를 요하는 미디어교육의 특성상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미디어교육은 '비싸고 배부른' 교육일 수 있다. 이런 교육들이 그저 한번의 좋은 경험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표현과 의사소통, 주류미디어에 대한 비판, 참여적 제작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각 부문운동과 좀더 긴밀하게 연계되는 것은 물론 접근권을 높일 수 있는 미디어환경과 함께 미디어센터와 같은 인프라의 구축, 공적 지원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서는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가 소통될 수 있는 공간, 즉 대안적인 매체를 확보하고 기존의 주류 미디어를 전유하는 일도 필요하다. 지난 달 개국한 <성서공동체FM>이 대표적이다. "이주노동자와 소외된 이웃의 이야기를, 소박한 우리네 이야기를 담은" <성서공동체FM>은 1와트의 소출력으로 반지름 5킬로미터 안 지역에서 들을 수 있는 비영리라디오로 대구 성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와 주민들이 직접 말하고 직접 만드는 동네방송국이다.

<성서공동체FM> 홈페이지(scnfm.or.kr)

▲ <성서공동체FM> 홈페이지(scnfm.or.kr)



언론이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공허한 선언을 넘어 그러한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고 적극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공간이 실질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서 미디어교육은 인권운동의 영역으로 사고될 필요가 있다. 미디어교육을 통해 작지만 다양한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될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케이션 권리가 보장되고 사회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임

박혜미 님은 미디액트 미디어교육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