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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핵폐기장 주민투표 부정 의혹 얼룩

환경시민단체들, "관권 주민투표 중단하라…결과 인정 못해"

다음달 2일 핵폐기장 부지선정 주민투표를 앞두고 해당 지자체에서 공무원이 개입해 불법 투표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주민투표는 전북 군산, 경북 포항·경주·영덕 등 4곳에서 동시에 실시되며, 유권자 1/3이상이 투표해 과반수가 찬성한 지역 가운데 찬성율이 가장 높은 곳이 부지로 선정된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는 투표율·찬성율 높이기를 목표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공무원이 찬성 투표 권유" 의혹 제기

군산시의 경우 공무원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사람들이 부재자신고서를 들고 호별방문을 하는가 하면 전북도청 공무원이 휴대전화로 찬성 투표를 권유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군산핵폐기장반대범시민대책위(아래 군산대책위)는 6일 "시민들의 자유투표의지 마저 무시하고 친인척, 지인을 가리지 않고 직접 신고서를 받고, 이를 한곳에 수합 각 동으로 발송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관권개입에 대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군산대책위는 부재자신고서가 찬성 투표 예상자에게 나눠진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군산대책위의 주장에 따르면 △전북도청 공무원이 군산시의 연고지에 와서 동네 노인들로부터 부재자신고서를 받다가 농민회 회원과 말다툼을 벌였고 △기초생활 수급권자 명단을 가진 사람들이 아파트를 돌며 부재자신고서를 받다가 제보를 받고 현장을 덮친 대책위 관계자에 의해 경찰에 신고 당했으며 △식당주인이 동사무소 공무원의 부탁을 받아 손님들로부터 부재자신고서를 받다가 선관위의 조사를 받는 등 공무원들이 광범위하게 개입하고 있다.


선관위, "지자체의 객관적인 정보 제공은 합법"

이처럼 지자체가 노골적인 핵폐기장 찬성활동을 벌이고 있는 데는 주민투표법의 한계가 한몫을 하고 있다. 주민투표법 제21조는 '지방의회 의원을 제외한 공무원'은 투표운동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같은법 제4조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은…주민이 정확하고 객관적인 판단과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도록…다양한 수단을 통하여…각종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해 지자체의 투표운동 개입 가능성을 열어놨다. 지자체가 '주민의 판단을 돕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과 '찬성 투표운동'을 구별할 수 있는 뚜렷한 기준이 없는 것.

중앙선관위 또한 명확한 기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산업자원부 장관이 △처분시설의 안전성 △절차의 투명성 △지역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을 내용으로 하는 언론매체 광고의 주민투표법 저촉 여부 질의에 대해 지난달 2일 "(정부와 지자체가)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정보 등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아니하는 일방적 주장을 홍보하는 때에는…규정에 위반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달 9일 경주시장이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의 안전성'과 '유치 지역 지원에 관한 사항' 등을 △홍보물로 만드는 것 △반상회에 직접 참석해 설명하는 것 △순회하면서 계속적·반복적으로 주민설명회를 개최해 설명하는 것 등의 위법 여부 질의에 대해서도 같은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렸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위법기준이 되는) '객관적으로 검증된 정보' 여부는 사안에 따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현재 지자체의 홍보활동을 일률적으로 불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공무원들이 유치 찬성 단체를 구성하거나 투표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밝혔다.


"부재자투표로 찬성율 제고"…관권 개입 우려

하지만 이런 유권해석을 발판삼아 해당 지자체는 노골적으로 찬성 투표운동에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경상북도(도지사 이의근)는 "그동안…주민투표법에 지나치게 묶여 있어 방폐장유치찬성율에 결정적인 요인인 방폐장의 안전성과 각종 특별법상의 정부지원 내역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조차 널리 알리지 못"했다며 "핵반대 단체에 의해 왜곡된 각종 인식을 바로잡는데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특히 4일부터 8일까지로 예정된 부재자신고가 지자체 사이에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경상북도는 "직접 투표소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기권보다는 부재자투표로 찬성의사를 표명할 경우 찬성율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판단"한다며 부재자투표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고 6일 밝혔다. 또 부재자투표 신고대상으로 '투표일에 투표소에 가서 투표할 수 없는 자'가 포함되어 있는 점을 들어 "사실상 본인이 원할 경우 부재자 신고만 하면 유권자는 누구나 부재자 투표가 가능하다"고 부재자 신고를 독려했다.

부재자신고를 한 사람에게는 24일까지 투표용지가 발송되고 본인이 '지워지지 않는 필기구'로 기표해서 선관위로 회송하게 된다. 극단적인 경우 이 과정에서 돈으로 투표용지를 사는 매표행위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대리투표에 대한 처벌조항도 엄하고 선거문화가 과거와 달라져 안심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관권·금권이 개입될 가능성이 크다.

6일 열린 환경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

▲ 6일 열린 환경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



"주민투표 결과 나와도 인정 못해"

이런 가운데 환경시민단체들이 주민투표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6일 환경운동연합, 청년환경센터, 참여연대 등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자원부의 주민투표 실시 요구(9월 15일)가 있기 이전부터 지방자치단체들이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유치찬성단체에 지원하고, 공무원들이 유치찬성운동에 깊숙이 개입하는 등 주민투표의 공정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들이 발생해 왔다"며 "사전에 금권, 관권의 개입으로 공정성을 이미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고 상공인이 주축인 찬성유치단체는 무제한으로 홍보비를 쓰며 행정력과 공조직을 총동원하는데 비해 농어민이 중심인 유치 반대측은 생업도 접고 자기 돈을 써가며 이웃에게 육성으로 호소해야 하는 불공평한 상황이 극명하게 대비된다"며 "사실상 주민 참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정책을 합리화'하거나 '정책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 위해 활용하는 제도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공정성을 상실하고 혼탁과 과열, 나아가 관권과 금권이 지방자치를 짓밟는 방폐장 주민 투표의 중단을 요구한다"며 주민투표가 예정대로 진행되더라도 "참여 민주주의를 거꾸로 돌리는 주민 투표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병모 변호사(환경법률센터 이사장)는 "주민투표 자체는 법집행이므로 그 자체를 막기는 힘들겠지만 불법 투표운동에 대한 가처분이나 고발 등은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개표결과가 나오고 나면) 실효성은 없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일방적인 주민투표로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 시절 시작된 원자력발전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물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