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세계무역기구(WTO) 홍콩각료회의 저지시위를 벌이다 체포돼 기소된 한국인 11명이 전원 귀국할 수 있게 됐다.
'WTO 홍콩 각료회의 저지를 위한 한국민중투쟁단'(아래 한국투쟁단)에 따르면, 11일 홍콩 쿤퉁법원에서 열린 4차 심리에서 홍콩검찰은 기소된 한국인 가운데 8명과 일본·대만·중국본토 출신 3명 등 11명에 대해 공소를 취하해 석방했다. 하지만 홍콩검찰은 양경규 공공연맹 위원장에 대해 '허가받지 않은 집회'(unauthorized assembly)에 참가한 혐의로, 전농 촬영팀 박인환 씨와 윤일관 전농 전남순천 사무처장은 각목을 소지하고 경찰에게 진흙을 뿌리는 등 '불법집회'(unlawful assembly) 혐의로 공소를 유지했다.
재판부는 공소유지된 3명에 대해 변호인단의 신청을 받아들여 보석금을 2500홍콩달러에서 3만홍콩달러로 올리는 조건으로 이들의 귀국을 허용했다. 3월 1일 오전 9시30분(현지시각) 시작되는 본재판은 같은달 7일까지 날마다 같은 시각에 열릴 예정이다.
한국투쟁단에 따르면 양 위원장은 나머지 단원들이 무죄라는 사실을 홍콩검찰이 인정한다면 본인은 무죄이지만 투쟁단 지도부로서 책임을 진다는 차원에서 '허가받지 않은 집회' 참가혐의를 받아들이겠다고 해 기소됐다. 하지만 홍콩검찰은 박 씨와 윤 씨의 경우 "(경찰과의 직접대면에서) 지목된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기소한다"며 추가 기소했다. 이에 따라 이날 심리에서 양 위원장 등 3명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한국투쟁단은 이날 성명서를 내 "(양 위원장의 경우) '정치적 책임' 차원에서 기소한 것이며, 나머지 두 명의 경우 '피해'경찰도 아닌 경찰 지휘자가 '저 사람이다'라고 지목했다는 사실 외 명확한 증거가 여전히 없다"며 "3명 모두 사실상 죄가 없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홍콩당국에 대해 "기소를 취하하고, 오히려 연행 및 구금 과정에서 벌어진 경찰의 인권침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귀국이 허용된 양 위원장은 이날 전화통화를 통해 "기소내용이 사실과 다르므로 재판을 통해 무죄가 입증되리라 확신한다"며 "어려운 싸움이었지만 정당한 투쟁임이 확인됐다는 측면에서 투쟁의 성과가 느껴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재판이 이어지는 것을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재판과정에서 WTO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세계언론을 통해 자꾸 얘기되면서 이 투쟁을 끝나지 않는 투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한국투쟁단 소속 11명과 일본인 1명은 지난 5일부터 침사츄이 페리 선착장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어 9일과 10일에 걸쳐 서울·뉴욕·온타리오·콜롬보·마닐라·시드니·동경·자카르타 등 17개 도시에서 무사귀환을 요구하는 국제공동행동 집회가 열렸다. 아시아·유럽·아프리카 등 전세계 1400여 시민사회단체와 개인들이 도널드 창 홍콩행정장관에게 항의서한과 탄원서를 보내 홍콩당국을 압박했다. 10일에는 홍콩시민 100여명이 지지 철야단식농성에 돌입하기도 했다.
양 위원장은 "홍콩민중단체와 홍콩시민들의 지원과 지지는 국내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며 "이들이 없었다면 힘든 싸움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석방자들 가운데 한국인들은 13일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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