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시화공단에 가면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것이 그 해의 최저임금이다. 벼룩시장이나 길거리에 있는 구인 광고를 보면 대부분 그해 최저임금을 시급으로 적어놓고 있다. 반월‧시화공단에 입주한 업체 상당수가 대기업의 1차 하청을 비롯해 3차 이하 하청 업체들이다. 전체 노동자 중 12.8%로 추산되는 최저임금 이하 노동자들이 대부분 이러한 중소 영세사업장에 몰려 있다. 그렇기에 반월‧시화공단을 비롯한 공단 지역에서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최저임금 결정시기만 되면 대기업들까지 나서서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윽박지른다.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 구조를 가진 대기업이 나서서 최저임금 인상을 저지하는 모습은 중소 영세 사업장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한 단면이다.
최저임금으로 유지되는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1993년 10~29인 사업장의 평균 임금이 85만 원선이었을 때, 300인 이상 사업장의 평균 임금은 1.3배인 110만 원이었던데 비해 2013년에는 281만 원 대 458만 원으로 1.6배까지 차이가 벌어졌다. 한편 5~29인 사업장 노동자 비중은 1999년 36.7%에서 2012년 42.2%로 약 5.5% 증가한 반면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비중은 1999년 24.9%에서 2012년 현재 20.1%로 약 4.8%포인트 하락했다. 이러한 차이를 가능하게 한 큰 원인 중 하나가 대기업 중심으로 수직 계열화된 하청 구조와 간접 고용 확대이다.
대기업들은 노동 유연화를 내세워 핵심 사업을 제외한 부분들은 외주화하여 자신들의 이윤을 확보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대기업의 지배를 받지만 외형적으로는 독립적인 수많은 하청업체와 파견업체들이 생겨났다. 예전에는 한 공장에 같이 있을 라인들을 독립 업체로 분리시키고, 반장이나 팀장이었던 이들을 소사장이라 이름붙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해졌다. 이렇게 대기업이 정점을 찍는 하청의 피라미드에서 원청 업체는 낮출 수 있는 최대한 낮춘 인건비로 계산된 납품 단가를 하청 업체에 강요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려 한다.
이것이 재하청 등의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되면 결국 최하위 하청업체는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나 그 미만을 지급해야만 가능한 수준의 제품 단가를 강요받는다. 결국 현재의 하청 구조는 중소 영세사업장에 대한 최저임금을 강요함으로써 그들의 이윤마저 끌어다 자신들의 이윤으로 삼는 대기업 중심의 구조인 것이다. 여기에 지난 7월 1일 정부가 발표한 2015년 고용형태공시 결과에 나타난 5,0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27.3%에 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더한다면 실질적으로 대기업은 많은 최저임금 적용 대상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윤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하청, 간접 고용에 발목잡힌 노동권
하청, 간접 고용의 구조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실질적인 고용주가 누구인지 헛갈린다. 명목상 사장은 있지만 그는 어찌 보면 자신보다 조금 더 돈을 받는 ‘사업주’ 노동자에 불과해 보이기도 한다. 이미 복잡한 원하청의 피라미드에서 중소영세사업장의 선택폭은 제한적이다. 사장과 아무리 담판을 지으려 해도 원청의 납품단가로 결정되어버린 자신들의 임금을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그리 녹록해보이지 않는다.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은 540조를 넘는다지만 당장 중소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단 10만 원의 월급 인상도 꿈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량 빼기의 압박 속에서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고용불안 속에서 그저 하루하루 일할 수 있는 것에 자족하는 것이 맞아 보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원청에서 온 사람들이 생산 관리, 품질 혁신이라는 명목으로 하청 업체의 작업 방식이나 노사 관계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노조를 만들어 노동권을 지키려는 시도도 위협받게 된다.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폐업으로 사내 하청업체 자체를 없애 단결권을 무력화시키려 했던 현대중공업의 사례처럼 대기업의 지배를 받는 하청 구조 안에서 노동자의 단결권은 언제든 쉽게 부서질 수 있다. 또한 많은 위험 업무들이 사내 하청 등에게 떠넘겨져 저임금의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더 많은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언제부턴가 언론에 등장하는 산재 사고의 경우 피해자 앞에 ‘하청’, ‘파견’이라는 말이 따라 붙는 것이 일상이 된 것처럼.
결국 우리의 노동권은 바로 우리 앞에 있는 사장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 관계를 지속시키는 거대 자본의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음이 분명하다. 자신들의 노동 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원청’이라 불리는 자본에게 요구해야 한다. 하청, 간접 고용의 형태로 책임은 회피하면서 노동의 결실은 앗아가는 그들을 우리의 테이블에 끌어들여야 한다. 기업 단위의 싸움만으로는 우리의 노동권을 다시 찾아올 수 없다. 우리의 임금을 실질적으로 구속하면서 하청과 간접고용의 뒤에 숨어 있는 대기업을 불러내야 한다. 가까이는 산별노조, 지역 노조 등을 통해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공동의 표준임금요구안을 만들어 이를 관철시키는 방법에서부터 개별 기업이 아닌 공동의 유기체로서 하청과 간접 고용 문제를 바라본다면 우리의 상상력은 더욱 확장될 수 있다. 구조를 깨지 않는 한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대표되는 중소 영세 사업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결코 바뀔 수 없다.
진짜 사장과의 싸움을 준비할 때
민주노총과 한국 노총은 7, 8월을 제조업 총파업 시기로 선언하였다. 제조업 총파업은 단순히 한 업종의 총파업이 아니다. 이것은 복잡한 하청과 간접고용의 구조 속에서 거대 자본에 묶여 있는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일어나 그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진짜 사장’에게 노동자들의 요구를 한 목소리로 외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내 월급 명세서에 찍힌 회사와의 싸움을 넘어 삼성에게, 현대에게 ‘너희들이 박탈해간 내 존엄함을 돌려달라’고 이야기하는 싸움을 이제 시작해야 한다. 저들에게 사내유보금을 근거로 양보를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정말 외주화시켜 버린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밝히며 이것들을 바로잡는 싸움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