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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성소수자 인권감수성 없는 인권위원장?(20150805)

국제인권기준에 대한 몰이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협소한 이해

인권은 언제 우리의 삶으로 다가오나? 인권은 개인에게 어떤 말인가? 서러운 경험을 내가 못난 탓이지 하며 마음속으로만 삭히다가 인권의 언어로 만났을 때 내 탓이 아님을, 우리 사회가 바꾸어야 할 문제임을, 내 권리의 문제임을 깨닫게 해주는 말이다. 그래서 삶의 해를 가리던 구름에게 이제는 비켜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힘을 만드는 일이다. 인권의 언어는 당사자들의 고통 어린 증언과 투쟁으로 만들어진다. 그러하기에 인권의 언어는 죽은 언어가 아니고 살아 움직이는 언어이자 인권의 주체로부터 나오는 언어이다. 인권의 역사만큼이나 인권의 내용과 권리 목록과 원칙은 풍부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국가인권기구의 역할은 얼마나 중요할까? 딱딱하게 굳어진 법의 언어로 잡히지 않는 것을 인권의 언어로 잡아내 우리 사회의 인권을 증진시켜야 하는 역할이 있다. 살아있는 인권의 잣대로 인권의 현실을 체감해야 가능하다. 인권감수성은 지식으로만 만들어질 수 없고 수많은 사람들과의 대화, 인권침해 피해자들과의 소통, 성찰적 태도로 부단히 노력할 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 나라의 인권을 다루는 공식 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수장이 그러한 감수성이 없다면 인권위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국가인권기구에 관한 국제기준인 파리원칙에서도 인권위의 구성과 그 구성원의 인선에 있어 인권 관련 시민단체(NGO)와 노동조합, 전문가 단체 등의 참여와 협력이 가능해야 한다고 명시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시민사회와의 부단한 소통과 끊임없는 인권 침해 현장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인권위원 인선절차와 인권위의 역할

그런데 7월 20일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은 이성호 서울중앙지법원장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후보자로 내정했다. 국가인권기구 간 국제조정위원회(이하 ICC)가 2008년부터 한국에 권고한 ‘투명하고 참여적인 인권위원 인선절차’와는 거리가 먼 밀실 인선이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법에는 인권위원의 임명권자만 있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지는 없고, 그냥 임명권자로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만이 명시되어 있기에 이러한 잘못된 관행이 인권위 설립 이래 지속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권위원으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인권위원이 되고 그들은 임명권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인권위의 결정을 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독립적인 인권위의 역할로부터 멀어지고 인권의 잣대는 실종되고 있다. 인권위는 세월호 참사나 통합진보당 해산 등 정부가 한 인권침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위 사진:청와대의 인권위원장 밀실인선을 규탄하는 7월 21일 청운동사무소 앞 기자회견


또한 인선절차가 없다 보니 법조인을 쉽게 임명하는 경우가 많아 인권위원회의 다원성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 ‘법을 알면 인권을 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이로 인해 인권위의 논의는 인권의 잣대가 아닌 실정법의 테두리에 갇혀있는 경우가 많다. 제3의 사법기구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온다. 심지어 청와대는 이성호 후보자를 추천한 사유에 국가인권위원회를 “준사법기관”으로 명시하는 등 인권위에 대한 낮은 인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도 법조인(판사, 변호사, 검사)과 법학자 등 법률가가 인권위원 11명 중 8명인데 또 판사 출신의 인권위원장이라니.

그래서 ICC는 ‘인권위원 다원성 결여와 인권위원 인선절차의 부재’를 이유로 작년 3월 한국 인권위 정기 등급심사에서 등급 결정을 보류하기까지 했다. 작년만이 아니다. 2014년 10월, 2015년 3월까지 총 세 번이나 등급 결정을 보류했다. 올 3월 심사 때는 인권위원장이 교체되는 시기라는 점을 짚으면서 제대로 인선절차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구체적으로 1)공석을 널리 공개하고, 2)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지원자의 수를 최대화하고, 3)지원, 심사, 선출, 임명 과정에의 광범위한 논의와 참여를 도모하며, 4)선결된 객관적이고 공시된 기준을 바탕으로 지원자를 평가하라고 권고했지만 청와대는 어느 것도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이성호 후보자가 인권위법에 명시된 자격인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인권위원장 후보자가 어떤 인권 관련 활동이나 연구를 했는지 청와대는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성소수자 인권감수성 없는 후보자

그런데 얼마 전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성호 후보자는 2013년 서울남부지방법원 법원장으로 재임하던 중 성별정정을 신청한 MTF(Male To Female) 성전환자에게 “여성으로서의 외부 성기를 갖추었음을 식별할 수 있는 사진을 2장 이상 제출하라”는 보정명령을 했다. 당시 재판부는 성전환자인 신청자에게 대법원이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는「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이하 대법원 지침) 3조에는 없는 사진을 요구한 것이다. 대법원 지침에는 ▲정신과 전문의사의 진단서나 감정서 ▲성전환시술 의사의 소견서 등이 있을 뿐이어서 이렇게 사진을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사건으로 당사자는 매우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후보자의 답변은 책임회피 일색이었다. “(성기 사진 요구는) 당연히 잘못된 것이고, 당시 담당 사무관한테도 잘못됐다고 얘기해 그 뒤로 그런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소신을 가지고 보정명령서를 보낸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책임을 느낀다”고 언론에 해명하였다. 하지만 보정명령은 ‘재판장’이 결정하는 것으로, 사무관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보정권고와는 형식적으로 다르기에 몰랐을 수 없다. 사무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기에 거짓해명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후보자가 당시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의식이나 대법원 지침을 몰라서 그러한 인권침해적 보정명령에 대해 생각 없이 결재했다고 답변하는 것이 솔직한 태도이다. 사실 대법원 지침에는 인권침해적인 요소가 있어 2008년 인권위는 대법원 지침이 차별적인 규정들을 포함하고 있고 성전환자에 대한 비밀누설 금지 조항이 누락되어 있다며 국회에 특별법 제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인선절차가 있었다면 대법원 지침보다 낮은 인권의식과 인권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후보자로 오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참여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걸러졌을 것이다. 

사실 대법원 지침을 몰랐다고 해도 성별을 바꾸는데 성기 사진을 보여 달라는 요구가 얼마나 무례하고 모욕적인지는 최소한의 감수성이 있다면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은밀한 신체 부위를 법원장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판사의 권위를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인격권 위에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특히나 아람회 간첩조작 사건을 무죄 판결하면서 선배판사를 대신해 사과했던 그이기에 더욱 실망스럽다. 그는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법관에게는 소수자 보호라는 핵심 과제가 있어 절대 권력자가 진실에 반하는 요구를 해도 소수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소수자 보호를 강조했었다. 그러나 그의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수자의 범주가 매우 협소하다는 것을 이번 사건이 말해주고 있다. 최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세력이 발호하고 있는 현실이라 그의 전력은 매우 우려스럽다. 

그의 인권관련 경험이나 국제인권기준에 대한 이해가 없음은 강호순 사형판결이나 실천연대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20여 년 전부터 유엔인권기구가 “국제인권기준에 뒤떨어진 한국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국가보안법과 사형제도 폐지가 필요하다는 권고를 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러한 악법의 폐지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이 가입한 국제인권규약(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 등 한국이 비준한 국제인권규약은 10여개이다.)은 국제법에 준하기에 행정부만이 아니라 입법부, 사법부도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판결문에서 국제인권기준이나 권고를 인용한 것을 보지 못했다. 

우리가 바라는 인권위원장은 인권감수성과 인권경험이 두루 있는 사람이다. 엄청난 엘리트나 지식인을 원하는 게 아니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에 맞서 인권의 언어로 침해당한 그/녀들의 인권을 옹호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투명한 인선절차가 필요하다. 권력자들이 지명하는 인권위원장은 그렇게 만들어질 수 없다. 한국을 공식방문했던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인 프랑크 라뤼처럼 노동변호사로 인권운동을 하거나 군부독재의 칼날을 피해 미국에 12년 망명생활을 했거나 과테말라 민주화 이후에 과거사 청산을 위한 특별위원회 관련 활동을 하는 인물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 사회 인권현안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인권감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신체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고, 성소수자 혐오로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현실을 외면했던 인물이 인권위원장이 된다는 것은 부끄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