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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공단 노동자들 공동의 경험과 감각 속에서 만들어가는 임금에 대한 권리!

-반월시화공단 임금실태조사를 시작하며

안산의 반월공단에 빅창이라는 아파트형 공장이 있습니다. 아파트형 공장은 우리가 흔히 보는 커다란 조립식 건물이 아니라, 겉보기에는 오피스텔 건물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직원 서너 명이 일하는 작은 공장들이 입주해 있는 곳입니다. 높은 천정과 각층마다 주차가 가능한 넓은 통로가 특징입니다. 보통 이런 곳에 큰 식당들이 있어서, 주변 공장의 노동자들도 식사를 하러 모입니다. 넓디넓은 반월시화공단에서 노동자 만나기가 쉽지 않은 월담 활동가들에게 이런 거점은 오아시스 같은 곳입니다. 매달 그 곳에서 제가 꾸준히 선전물을 건네다보니 이제는 얼굴을 익히고 인사하는 노동자들도 몇 분 있습니다.

 

그 중 한 분은 주변 공장 건물 청소를 하는 업체에서 일을 하는 여성 노동자였습니다. 아파트나 빌라밀집지역에서 청소를 대행하는 업체가 있는 것처럼 공장 청소 대행업체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월담 선전물 잘 읽고 있다며 먼저 인사를 건네주셨습니다. 궁금해 했던 것도 잘 설명되어 있고, 무엇보다 우리 이야기라서 잘 읽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다만 말이 좀 어렵고 글자가 컸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이면서요. 조만간 공단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임금투쟁을 시작할 생각이라, 올해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에 따라서 임금이 올랐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자기는 잘 모른다. 그냥 사장이 주는 대로 받는다고 합니다. 소식지 애독자임에도 임금은 사장이 알아서 잘 챙겨주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그 업체 사장이 잘 챙겨줄 수도 있겠지만, 그 분에게 임금은 본인이 감히 궁금해 하거나 토를 달 수 없는 사장의 고유 권한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합니다.

 

많이 주면 기분 좋고, 적게 주면 불만이지만 임금은 사장이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공단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정서인가 봅니다. 큰일입니다. 그걸 깨보겠다는 게 올해 월담 임금투쟁의 가장 큰 목표인데, 만만치 않겠습니다. 빅창에서 만난 노동자의 정서가 비단 임금에만 해당될까요? 회사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결정이 사장의 판단과 아량에 달려있는 이런 전제적인 상황에서, 작업환경, 인격적 대우와 같은 비금전적인 여러 상황들도 사장이나 관리자의 의지에 달린 일이 되기 십상입니다. 개별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저항은 맘에 안 들면 그만두는 것뿐입니다. 회사에 주는 타격이나 변화를 생각해보면 저항보다는 탈출에 가깝지만 말입니다.

 

탈출이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공단에서는 이 회사나 저 회사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암담한 현실에서 출발하는 게 역설적으로 해결의 출발일 수 있습니다. 공단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겪고 있는 현실로서 저임금, 임금결정의 주체이기보다는 대상에 머무는 현실이 바로 그 출발입니다.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 상황, 조건이라는 집단적인 감각과 인식을 깨워보고자 합니다. 바로 그런 집단적인 감각 속에서 주는 대로 받지 말고 제대로 받는지 따져보자, 더 나아가 임금결정 과정의 주체로 참여하는 게 노동자의 권리라는 걸,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이 함께 확인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3월 중순부터 임금실태조사를 시작합니다. 노동시간, 평균급여, 희망 최저임금을 비롯해서 급여명세서를 받는지, 임금체불 경험은 얼마나 되는지, 임금협상과정이 있는지, 있다면 참여할 수 있는지부터 조사하려고 합니다. 공단 노동자들이 임금을 얼마 받고 있다, 얼마를 받고 싶어 한다는 결과를 넘어서서 어떤 임금관계 속에 놓여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바로 그런 관계를 바꿀 때만 변화가능하다는 점을 공단 노동자들과 함께 느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