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고 싸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거 같아 앞이 막막할 때가 있다. 올해 유성기업에 다니는 노동자 한광호가 세상을 떠난 후,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싸움에 함께 하면서 나는 그런 감정을 많이 느꼈던 듯하다. 비 오는 주말, 천막도 못 치는 서울시청 광장 분향소에서 몇 안 되는 유성지회 노동자들과 처량히 있으면서 믿지도 않는 신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쓸쓸했던 날이었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유성지회 노동자들과 있을 때 다가왔던 수십 명의 향린교회 신도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갑자기 텅 빈 광장이 가득 메워진 느낌뿐 아니라 몸조차 따뜻해져 눈물이 났던 그날. 연대란 그런 걸까?
유성기업은 2011년부터 노조를 무너뜨리겠다고 6년째 금속노조에 가입한 유성지회 조합원들과 간부들을 괴롭혔다. 하루 종일 몰래카메라나 CCTV로 감시하고 일일관찰일지까지 쓰면 트집을 잡고 고소고발, 징계를 일삼았다. 그걸 바탕으로 임금까지 삭감했으니 생활은 더 힘들어졌다. 게다가 어용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과 일상적으로 차별하니 공장은 일터가 아니라 지옥 같았다. 그래서 조합원들의 정신건강을 날로 나빠졌고 결국 3월 17일 노동자 한광호가 목숨을 끊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심각하게 된 데에는 현대자동차의 사주가 있었다는 사실은 올해 초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 주고받은 이메일에 현대차 개입이 알려졌지만 아직도 검찰은 기소도 하지 않았다.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은 노동법과 헌법을 위반했지만 아직 1심도 결과가 나지 않았다. 얼마 전 검사는 유시영 회장에게 고작 1년을 구형했을 뿐이다. 유성기업과 현대차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성지회 노동자들은 한광호 열사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현대자동차 본사가 있는 양재동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연대하며 배운 것들
사랑방만이 아니라 인권활동가들은 꾸준히 금속노조 유성지회 노동자들과 연대를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약칭 전장연)를 비롯한 장애인권활동가들은 서울시청 분향소 때 함께 장애인권열사 송국현 추모와 한광호 열사추모를 함께 했다. 행동하는 성소수자인권연대(약칭 행성인)는 조합원들에게 성소수자인권교육도 하며 함께 연대해왔다. 국제민주연대나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는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방한 때 유성기업의 상황을 잘 설명하기 위해 고심했고 다른 나라 인권단체들에게도 알리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인권운동장에서 모인 여러 인권활동가들이 프레시안에 이어말하기를 하며 노조파괴와 다른 싸움이, 노동자와 철거민이, 반도체노동자와 밀양싸움과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글로 연재하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 유성투쟁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한번쯤 상기하는 자리가 있었다. 바로 ‘유성기업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인권활동가 문화제’다.
10월 10일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연대가 뭔대? 몬대?> 문화제가 열렸다. 여는 공연을 유엔인권정책센터의 김기원-홍승기 활동가가 해주었다. 멋진 공연이었다. 바쁜 일정에도 두 사람이 반주와 곡을 맞추느라 보냈을 시간을 생각하니 더 고마웠다. 노래는 ‘디어 미스터 프레지던트’라는 곡으로 한국어로 번역하면 ‘친애하는 대통령께’가 된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노숙인과 동성애자 인권, 최저임금, 전쟁 등을 말하며 어떻게 당신은 편하게 잠들 수 있냐고 묻는 내용이다. 현대자동차 정몽구나 그를 비호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물론 당시에는 영어에 약해서 내용을 몰랐다.^^)
연대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었다. 반도체노동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권영은,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전장연 이정훈, 행성인의 모리, 유성지회의 김순석 조합원이 함께 했다. 모리 님은 직장에서 일하면 커밍아웃할 수 없어 힘들어할 때 동료들이 힘이 되었던 경험을 나눠주었고, 이정훈 님은 1000일 넘는 장애등급제 폐지 농성을 하면서 영정까지 깨진 한광호 열사 분향소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연대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나현필 님은 이제 막 노동운동이 시작된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유성지회 노조탄압 관련 국제캠페인에 참여를 요청했던 경험을 말해주며 우리도 국제연대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김순석 조합원은 상경투쟁을 하지 않으면 몰랐을 것들이 많았다고 했다, 장애인권활동가들이 그렇게 전투적으로 싸우는지, 성소수자 차별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며, 연대가 아니면 버티지 못했을 상경투쟁에 인권활동가들만이 아니라 여러 시민들, 단체들이 함께 해줘 고맙다고 했다. 농성을 1년 넘게 한 권영은님은 농성장 살림살이는 비슷하다며 말을 꺼냈다.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시게 된 심야노동과 노조파괴나 반도체 노동자들의 삶을 갉아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재해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싸워줘서 고마워요~
이야기를 그렇게 마치고 나서 유성노동자들에게 연대를 표현하는 의미로 인권활동가들은 상장을 하나씩 선물했다. <튼튼투쟁상>, <꿋꿋이투쟁상>, <노동자건강권올림상>, <걷고 싶은 거리상>, <속시원상>을 선물했다. 그 중 재치 있는 상장을 두 개만 소개한다. <속시원상>은 유성기업은 노조파괴 지배계급인 현대차를 대상으로 모든 노동자를 대신하여 속이 뻥 뚤리는 농성을 이어가고 있기에 상을 드린다고 했다. <걷고 싶은 거리상>은 귀하는 적막한 현대차본사 앞 거리를 절로 걷고 싶고 팔뚝질하고 싶게 만들었기에 이 상을 드린다고 해 웃음을 줬다. 힘들지만 작은 웃음거리를 만들고픈 인권활동가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가을밤이었다. 연대란 땀과 웃음과 눈물이 범벅이 되는 그런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