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올해 국정감사 과정에서 폭로되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국회의원은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 전국 1800여개의 사립 유치원이 지적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감사를 받은 사립 유치원의 91%에 해당한다. 아직 감사를 받지 않은 유치원을 포함하면 문제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유총의 적반하장
사립유치원의 70%가 소속되어 있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는 사소한 실수까지 전부 포함시켜 일부 유치원의 문제를 전체 사립 유치원의 문제처럼 매도한다고 박용진 의원을 비판했다. 한유총이 사과는커녕 발뺌하는 모습을 보이자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주목할 점은 학부모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문제될 때마다 당사자로 발은 동동 구르지만 아이를 맡긴 처지에서 제대로 된 문제 해결에 나서지 못해왔던 이들이 그간 못 다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다양한 요구가 있지만 모든 이야기를 꿰뚫는 핵심은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이 요구에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사립 유치원이 뿌리내린 자리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초등학교 입학 전 아동의 교육과 보육은 개별 가정의 영역이었다. 당시 유치원은 비용이 많이 들어 부유한 집의 자녀만 다닐 수 있는 소수의 사설 교육시설로, 지금의 학원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러다가 1982년 유아교육진흥법이 만들어지고 유아 교육 인식과 정책이 달라졌다. 아동의 교육과 보육이 가정에서 유치원까지 확장될 수 있도록 유치원 보급 정책이 이어졌다. 1980년 전국 800여개의 사립 유치원은 1990년이 되기도 이전에 이미 3000개가 넘어섰고 국·공립유치원도 4000개가 넘게 세워졌다. 90년대 들어서 어린이집이 함께 보급되고 IMF 사태 이후 사립 유치원의 증가세가 잠시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2018년 기준 전국의 사립 유치원은 4200여개, 국·공립유치원은 4800여개가 되었다.
문제는 국·공립 유치원보다 사립 유치원을 다니는 아동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국·공립 유치원의 취원율은 2017년 기준 24.8%. 전국 69만 명의 유치원생 중 75%에 해당하는 52만 명은 사립유치원에 다니고 있다는 뜻이다. 국가는 유아교육을 강조했지만 인프라와 제도는 마련하지 않고 유치원 수 늘리기에만 치중했다. 국·공립 유치원의 경우 전용 시설 없이 초등학교 내 소규모 병설 유치원의 수만 키워왔고, 사립 유치원은 설립의 근거만 있을 뿐 운영에 관한 규정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 그 틈에 아동의 교육과 보육 영역에 시장이 형성됐고 학원도 학교도 아닌 애매한 시설이 뿌리를 내렸다. 이후 지금까지 아동 정책은 민간 시설을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어려운 지형 속에서 펼쳐졌다.
아동과 부모에겐 선택지가 별로 없다
사립유치원은 시장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원장의 교육 철학, 교수 방법만이 아니라 수익성 논리까지 뒤섞이다 보니 유치원마다 제공하는 교육 내용과 환경의 편차가 크다. 사립 유치원에 대한 학부모의 신뢰도는 유치원마다 천차만별이다. 자연스레 혼란을 피하기 위해 학부모가 가장 선호하는 유치원은 공립 단설 유치원이다. 병설과는 달리 유치원 전용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다른 국·공립 유치원과 같이 무상으로 다닐 수 있는 유치원으로 10명을 뽑는데 100명이 지원하는 현상까지 일어날 정도로 인기가 많다. 하지만 단설 유치원 비율은 전국 3%대로 엄청난 대기와 뽑기를 통해서만 입학이 가능하다.
이 ‘뽑기’에 실패한 아동과 학부모에게 제공되는 선택지가 병설 유치원과 사립유치원, 또 어린이집이다. 여기서부터는 각자의 조건에 맞게 선택을 한다. 긴 방학 동안 교육과 보육을 맡을 수 없는 조건이라면 병설 유치원은 제외되기 쉽다. 아이를 맡아줄 곳이 필요한 부모에게 사립 유치원은 거의 유일한 선택지다.
비싼 비용이 부담되지만 그나마 친절한 원장 선생님과 교사들을 보면서 안심하고 사립 유치원에 등록한다. 하지만 사립 유치원 교사들의 말은 다르다. 원생이 곧 수입인 사립유치원에서 부모에게 과도한 친절을 강요하고 화려한 건물 외관에만 치중하는 모습은 '보여주기'에 집중하는 사립유치원의 흔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반면, 아동에게 제공되는 교·보재에는 비용을 절감하자는 원장의 말 한마디에 교사는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서 개인의 주머니를 털거나 양질의 교육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임금과 하루 10~11시간 장시간 노동이 결합하면 아동의 교육과 보육을 담당하는 직업이라는 소신마저 저버리게 만드는 것이 지금의 사립 유치원 구조다. 이 구조 속에서 교사들은 오래 일하지 못하고 이탈을 선택한다. 2014년 기준 사립 유치원 교사 64%가 만 30세 미만이며, 2013년 사립유치원 퇴직자의 77%가 근속기간 5년 미만으로 사립유치원은 교육 시설로서 안정성도, 교사의 전문성도 쌓이지 않고 있다. 사립유치원에서는 아동의 권리도 교사의 권리도 실현되기 어렵다.
사립유치원 문제, 국가 정책의 문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장이 돈 좀 아껴보겠다고 급식 비리를 저지르고, 지원금을 유용해도 유치원 안에서는 이를 막아서는 사람이 없다. 교사에겐 애정을 갖기 어려운 직장이라 막을 의지가 생기지 않고, 학부모에겐 절실한 곳이지만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학부모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감시하고 싶어도 실제 내부를 들여다 볼 방법도 없을뿐더러 조금만 시도해도 "아이 그만 보내라"는 원장의 한마디면 곤란한 처지가 된다. 뉴스에서 유치원 급식 문제가 등장하고, 비리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애가 다니는 유치원은 아니길 바랄 수밖에 없다. 유치원은 많아졌지만 결국 교육과 보육을 책임져야 하는 주체가 개별 가족의 조건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지난 30년이 넘도록 국가도 무작정 손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2012년 교육과 보육의 공공성을 확보하라는 주장에 화답하듯 무상 보육, 누리 과정과 같은 정책들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아동의 교육과 보육을 권리로 접근하지 않았다.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1인당 보육비 지원과 함께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교육 내용이 비슷하게 제공되도록 기계적인 대책을 내놓았을 뿐이다. 민간 중심으로 돌아가는 체계는 흔들지 않았다. 지원금 지급으로 생색내는 안일한 방식이 지금 사립 유치원 비리 문제의 빌미가 되었다.
제대로 된 종합대책
아동의 교육과 보육이 뽑기에 의지하거나 돈벌이에 따라 좌우되는 구조를 이제 바꿔야 한다. 지금은 국회의원도 교육부 장관도 사립유치원 문제에 강경하게 대처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종합감사에 사립유치원 지원금 제도 정비, 국가 회계시스템 도입 등 사립 유치원에 대한 감시와 책임을 높이는 온갖 대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지금 대책을 이야기하는 정부 관료와 국회의원들도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한유총의 눈치에 따라 움직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관료, 국회의원 개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만큼 아동 정책이 사립 유치원을 우회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투명성 강화를 위한 대책이나 회계시스템 도입과 같은 대책만으론 역부족이다.
국·공립 유치원 확충도 마찬가지다. 지금보다 사립에 의존하는 비율을 낮춘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책의 방향이 그게 전부여선 안 된다. 핵심은 이미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사립 유치원을 '어떻게 아동의 권리가 실현될 수 있는 곳으로 만들 것인가'이다. 유치원을 '내 사유재산으로 하는 사업' 쯤으로 여기게 둘 것인가? 교육과 보육의 공공성을 담보할 종합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