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연석회의 성명>
공안문제연구소, 검열 중단이 아니라 해체가 정답이다
국정감사 기간 이전부터 공안문제연구소의 부적절한 표현물들에 대한 감정이 문제가 되어 왔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지난 22일 허성관 행자부 장관이 감정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허 장관의 일면 진전된 발언을 환영하면서도 그 이면에서 민간연구소로의 전환이라든가 어떻게든 기구 존속을 위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공안문제연구소는 경찰, 기무사, 국정원 등 공안기관들이 수시로 의뢰하는 감정대상물을 공안기관들의 입맛에 맞게 '감정'이란 이름으로 재단해 왔다. 아무런 전문적인 역량도 없는 이들에 의해서 학문적인 연구성과도, 언론의 기사도, 예술 창작물도 용공이니, 좌익이니, 찬양·동조니 하는 딱지를 붙이고, 이를 근거로 공안기관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입건, 기소를 하고, 법원은 유죄를 선고하여 왔다. 더구나 그나마 있는 기준조차도 의뢰 기관의 주문에 의해서 연구소장이 자의적으로 감정 결과도 마음대로 조작했던 것으로 드러나기까지 했다.
공안문제연구소의 감정 대상은 거의 모든 국민들의 발언이나 표현행위, 표현물들 모두가 이에 해당하였다. 공안문제연구소가 '사상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사찰한 '문건'은 매년 수천 여 건으로 지금까지 무려 8만여 건에 이르고, 그 범위가 광범함에는 기가 찰 뿐이다. <태백산맥>과 같이 국민들에게 널린 읽힌 베스트셀러 소설들, <자본론> 등 세계적 철학자의 이론서, 심지어 교과서에 수록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도 감정 대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동화나 시, 가요, 언론 기사, 노동·사회단체에서 나온 자료들 그리고 공당인 민주노동당을 포함해 정치인들의 발언까지 이들은 몰래 감시해 왔다. 정치적 표현뿐 아니라 예술과 학문, 언론 등 일상을 낱낱이 해부하는, 그야말로 국민들의 머리 속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왔던 것이다.
결국 모든 국가보안법 사건의 배후에는 공안문제연구소라는 해괴한 기관이 비밀리에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고, 이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의 반인권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기구의 축소나 재편이 정답일 수 없다. 공안문제연구소가 어떤 형태로든 있는 것 그 자체가 인권침해인 것이다. 이 기구의 존속과 유지 그 자체가 국제인권조약에 대한 위반일 이며,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이 침해이다. 국가보안법의 속성이 국민들에 대한 감시와 억압, 기본권의 침해임을 이 연구소의 존재가 웅변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공안문제연구소는 당장, 즉각적으로 완전하게 폐지하여야 한다. 아울러 검찰 산하의 민주이념연구소도 해체되어야 한다.
우리 인권단체들은 이 기관의 해체와 더불어 이번 기회에 국민의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국가보안법이 전면적으로 폐지되어야 함을 분명히 밝힌다.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공안문제연구소와 같은 인권침해를 낳는 기관은 언제고 다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4년 10월 26일
인권단체 연석회의
광주인권운동센터/군경의문사진상규명과폭력근절을위한가족협의회/다산인권센터/대항지구화행동/동성애자인권연대/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주의법학연구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부산인권센터/불교인권위원회/사회진보연대/새사회연대/아시아평화인권연대/안산노동인권센터/에이즈인권모임나누리+/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울산인권운동연대/원불교인권위원회/이주노동자인권연대/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인권실천시민연대/인권운동사랑방/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전북평화와인권연대/전쟁없는세상/진보네트워크센터/천주교인권위원회/평화인권연대/한국DPI(한국장애인연맹)/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전국 33개 단체)
성명/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