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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국가보안법과 인터넷

공안기구의 검열을 세탁하는 정보통신심의제도

국가보안법과 인터넷 ③

국가보안법은 단지 하나의 법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여러 법률 속에 ‘국가 안보’의 이름으로 스며들어 사상과 표현을 검열하는 거대한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에서 이루어지는 표현들을 심의하는 정보통신심의제도 그러한 체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는 국가보안법 및 방송통신위원회법과 연계하여 인터넷 상의 사상과 표현을 국가보안법으로 검열하고 있다.

공안 기관의 인터넷 사찰과 삭제 요구

경찰서 보안과 등의 공안 기구는 인터넷을 일상적으로 사찰하며 국가보안법이 금지하는 사상과 표현을 감시하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사하거나, 게시판 관리·운영자에게 해당 표현물의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그 자체의 위헌성과 반인권성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해당 표현물들이 정말로 국가 안보나 공공질서에 위협이 되는지 여부를 독립적 심사 기관이 판단하지 않고 “경찰의 판단”만으로 삭제를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국가 기구의 권력 남용이다. 시민이 공안 기구에 갖는 공포심은 매우 큰데 비해, 공안 기구가 내리는 판단의 신뢰성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의 삭제 요구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경찰의 삭제 요청을 거부한다고 해서 형사 처벌 등 국가 권력의 강제력이 발동되지는 않는다. 이때부터 정보통신심의제도가 표현물에 대한 강제 삭제를 위해 발동되기 시작한다. 경찰은 경찰총장을 통해 해당 표현물들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에 심의와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

기관들의 역할 분담으로 이루어지는 검열

정보통신망법은 제44조의7에서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를 유통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여 인터넷 상에서 유통될 수 없는 정보를 정한다. 그 중 하나가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정보”다.

또한 이 표현물들에 대해 1)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요청이 있었고 2)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후 시정 요구를 하였고 3) 게시판 관리·운영자가 시정 요구에 따르지 아니하였을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게시판 관리·운영자에게 해당 정보의 취급을 거부·정지 또는 제한할 것을 명하도록 하고 있다. 게시판 관리·운영자가 이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로 이어진다.



이 복잡한 구조의 검열 제도는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1. 공안 기구가 인터넷에 대한 일상적 사찰을 수행,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특정한 표현물들을 삭제하도록 요구한다. 2. 방통위 산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내용에 대한 “심의”를 수행하여 게시판 관리·운영자에게 표현물 삭제 등의 시정 요구를 한다. 3. 시정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방통위는 행정 명령으로 이를 강제하고 불응하면 형사처벌로 이어진다.

이렇게 각 기관들의 역할과 권한이 나뉘어져 있는 것은 국가 검열을 금지한 헌법의 심사를 최대한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어느 기관도 그 자체로 심의와 강제 삭제 권한을 둘 다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경찰은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한 행위를 수행한다고 여겨지는 표현물들을 수집하여 방통위에 심의와 삭제를 요청할 뿐이고, 방심위는 이를 심의하여 강제력 없는 시정 요구만 내릴 뿐이며, 방통위는 방심위의 심의 결과에 따라 삭제 명령을 내릴 뿐이다.

공안기구의 검열을 독립적 민간기구의 심의로 세탁

특히 심의 권한과 시정요구 권한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정보통신심의제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방심위는 스스로를 독립적인 “민간기구”라고 주장하며, 시정 요구는 강제력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2010년 「정보통신심의제도에 대한 개선권고」를 통해 방심위는 행정기구로 판단되며, 시정 요구 또한 방통위의 행정명령권에 의해 뒷받침되는 사실상의 행정명령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법원 역시 방심위를 행정기구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무엇보다도 방심위는 어떤 표현물이 정말로 국가 안보와 공공질서에 직접적이고 현존하는 위험을 끼칠 수 있는지는 고사하고,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지조차 판단할 능력이나 전문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다음과 같은 방심위 위원들의 회의 발언에서 보듯 이는 방심위원들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이며, 자신들은 경찰청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공안 기구의 판단이 “독립적인 민간기구”의 심의 결과로 세탁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해서 심의를 하는 것은 온당치 않고, 우리 위원회가 그런 지위와 권한을 부여받지도 않았습니다.” - 권혁부 부위원장, 제16차 정기회의

“(국가보안법 상) 찬양고무라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인 평가가 개입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디에서부터 찬양이고 어디에서부터 고무냐라는 것은 상당한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결론내리기는 어려운 부분이 아닌가, 이 정도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박성희 위원, 제13차 임시회의

“법조인이 아닌 저희들이 이것이 「국가보안법」에 해당되느냐, 안 되느냐를 논의한다는 것이 상당히 난감합니다.” - 김택곤 상임위원, 제14차 임시회의

“일정 부분 국가안보와 관련되어 책임을 지는 기관이 경찰청이고, 경찰청에서는 자체적인 검토를 거쳐 우리 위원회의 심의가 필요하다고 요청을 한 것이니만큼 그 부분이 충분히 존중되어야 하고, 또한 우리 심의결과에도 그 존중된 결과가 나타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최찬묵 위원, 제14차 임시회의


더불어 각 표현물들에 대해 심층적인 심사는커녕, 개별적인 심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가령 방심위는 13차 회의에서 무려 171건의 게시물들에 대해 구체적인 위험에 대한 심사 없이 일괄적으로 삭제를 결정하였으며, 14차 회의에서는 단 5개의 게시물들에 대해 일부 위원들이 개별 심사를 요구하였음에도 구체적인 심사 없이 일괄 삭제를 결정하고 있다. 각 표현물들이 국가보안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삭제를 결정하면서도, 심사위원들은 그것들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것이다.

“경찰청에서 심의요청을 해 온 수백 개의 사이트 중에서 사실은 이적 사이트라고 볼 수는 없고 좌파적인 정도의 사이트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것은 구제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한꺼번에 일괄해서 처리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 김택곤 상임위원, 제13차 임시회의

“저는 오늘 5개 심의대상 게시글을 두고 하나하나 여기에서 논의할 줄 알았는데 일괄처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 김택곤 상임위원, 제14차 임시회의


이렇게 독립적인 민간기구의 심사 결과와 시정요구로 위장된 공안 기구의 삭제 요구는, 다시 방통위의 행정 명령으로 강제력을 획득한다. 방통위의 게시물 삭제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벌금 1,000만 원 이하 혹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게 된다. 이로써 공안 기구의 판단과, 강제력 있는 삭제 명령으로 사후적 국가 검열이 완성된다.

공안 기구 판단만으로 삭제

이렇게 관련 기관들의 역할 분담 하에 이루어지는 복잡한 검열 과정에서, 어떤 표현이 정말로 공안 기구의 주장대로 국가 안보나 공공질서에 직접적이고 현존하는 위협을 구성하는지, 헌법과 인권 원칙에 비추어 검증해볼 수 있는 절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공안 기구의 자의적 판단만 있으면 그 표현물은 인터넷 상에서 배제되고, 헌법 상 표현의 자유 보장, 검열의 금지라는 인권 원칙들은 간단히 무력화된다.

국가보안법은 그 자체로도 위협적이지만, 국가가 만들어놓은 정교한 각종 통제 장치 속에 스며들어 사람의 말과 생각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그 무소불위의 위력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그 자체의 폐지뿐만 아니라, 이러한 연결 고리들을 하나하나 끊어내는 노력 역시 중요하다.

덧붙임

유성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