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정기국회에서, 불온정보통신을 억제하고 건전한 정보문화를 확립하기 위한다는 명분 하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설치규정을 신설하는 전기통신사업법개정안(1995. 1. 5. 공포시행)이 통과되었고, 이에 따라 그 시행령이 개정되어 지난 4. 6.부터 시행되었다. 전기통신사업법(아래에서는 법이라 함)과 그 시행령의 개정에 따라 그동안 정보통신진흥협회내의 민간기구로 존재하였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아래에서는 위원회라 함)는 지난 4. 13. 법적 설치근거를 갖는 정식기구로 출범하였다. 같은 날 위원회는 시행령 제16조의 2에 따라 정보통신윤리심의규정을 제정하였고, 앞으로 위원회는 이 심의규정에 따라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유통되는 정보(이하 전기통신정보라 함)'를 심의하여 건전정보의 유통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심의대상, 범위 파행 운영 우려
그러나, 심의규정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심의의 대상과 범위에 관한 규정이 법과 시행령의 위임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여, 파행적인 운영이 우려된다. 심의규정은 제3조, 제8조에서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유통되는 음성정보와 비음성정보를 모두 그 심의대상으로 규정하면서, [음성정보]와 [비음성정보중 공개를 목적으로 유통되는 데이터베이스]에 대하여는 사전 및 사후심의를, [비음성정보중 공개된 사설BBS . 공개자료실 . 대화방 등]에 대하여는 사후심의를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언론 . 출판의 검열을 금지하고 있고, 통신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전자적방식에 의한 정보의 제공과 유통이 언론활동의 하나이며, 통신의 한 방식임과 동시에 사상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임에 이론이 없다면, 위 규정들은 헌법의 규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래서 법 제53조의 2에는 '사전'심의가 아니라 '정보의 심의와 시정요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고, 시행령 제16조의 2 제3항에도 '정보의 심의 및 시정요구'라고만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 심의규정은 근거법령에도 위반되는 것이다. '심의'란 문자 그대로 '주어진 정보를 대상으로 심사하고 의논한다'는 뜻이다. 이에 비하여 공개 또는 공표되기 전에 심사하는 것을 '검열'이라고 한다. 국회는 예산안을 심의하지 검열하지는 않는다. 교도관은 수형자의 편지를 검열하지 심의하지는 않는다.
심의와 검열의 차이
양자는 명백히 다르다. '심의'라는 법률용어의 해석에 혼란이 초래하게 된 이유는 영화법상의 영화심의규정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법에는 '상영전' 심의라고 명백히 규정되어 있고, '상영전 심의'라는 문구는 마치 검열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1984. 12. 31. 개정되기 전의 영화법중 '검열'이라는 용어와 대체된 것일 뿐 그 실질적 의미는 공개전 심사의 의미를 갖는 검열이다. 이러한 영화의 사전심의규정은 법원에 의하여 위헌여부심사가 제청되어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중이다(공연법상의 각본과 실연의 '사전'심사규정도 위헌의 문제가 있어 여러 예외규정을 둠으로써 실질적으로는 폐지된 상태다).
만약 법과 시행령에 정보의 '사전'심의를 인정하는 규정을 두려고 하였다면 '정보의 심의 및 정보의 공개거부조치 또는 시정조000치'라는 규정과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두었을 것이다(이렇게 규정되었다면 직접적인 헌법위반의 문제가 발생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헌법과 법률에 비추어 위원회가 전기통신정보를 '사전'에 통제할 수 없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위원회의 잘못된 심의규정들 때문에, 최근 언론에서도 전기통신정보에 대한 사전심의가 이루어질 것이며 위원회의 시정명령을 거부할 경우 행정명령을 받거나 고발되어 형벌을 받는다고 보도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정보통신의 역기능에 대하여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만큼 앞으로 위원회의 활동이 기대되기는 하나, 한편 위원회는 내부 심의규정에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규정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하루빨리 해당 심의규정을 폐지하거나, 헌법과 법률에 맞도록 개정하여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를 기대한다.
무과실의 검열관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당연한 결론을 끌어내기 위하여 복잡한 논리적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다. 무과실의 검열관이 있을 수 없다고 운운하였던 밀턴(Milton)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모든 언론, 통신, 사상의 표현 등은 누구도 사전에 그 공표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공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퇴폐적이고 위험한 전기통신정보의 유통을 걱정하는 사람을 위하여 우리 법이 준비하고 있는 대비책을 부기하며 글을 맺는다.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하면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에 위반되며, 전기통신정보가 음란한 글 또는 영상일 경우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에 의하여, 반국가적 행위의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것일 경우는 형법이나 국가보안법에 의하여 처벌받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전기통신사업자나 정보통신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정보를 자체적으로 통제 관리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통제되지 않는다면 해당기관에 고발하여 시정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위원회는 이러한 일을 좀 더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인 셈이다.
김기중(덕수합동법률,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