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깜빡 잊고 나온 날은 왠지 불안하다.
인터넷 없이 며칠을 생활하기는 참 힘들다.
나는 이제 컴퓨터가 없으면 작업이 되지 않는다.
전기가 나가는 것도 문제다.
이들을 그저 생활 필수품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왠지 미안하다.
그만큼 내가 사는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욕망 충족을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고자 한다.
그것은 감각 몸 생명 혹은 사고 인식 기능 나아가 토지 재물 권력 종교가
될 수도 있고 군국주의, 제국주의, 자본주의 등 역사적으로 인간 삶의 양태를 결정지어온
다양한 문화 형식; 프로그램의 논리가 될 수도 있다.“
이 글은 고등학교 졸업 논문 에필로그에 수록되었던 글이다. 글의 출처는 아직도 확실치 않다. 나에게는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내 논문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친 글이다.
휴대폰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 난 사람과의 약속을 어떻게 했을까?
난 약속 장소에 30분 정도 일찍 나가서 기다린 걸로 기억이 된다. 당시에는 휴대폰이 없으니 약속을 취소할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고 늦어도 늦는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항상 약속 장소에 일찍 나가 있었다. 지금은 너무 쉽게 약속하고, 쉽게 늦고, 쉽게 약속을 취소하는 것 같다. 문명이 발달되면서 내 자신의 생활도 점점 나태해져가고 기계에 의존하게 되면서 내 자신의 능력보다는 기계가 표현해주는 능력을 더 믿게 된 것 같다.
이젠 기계가 생활용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존재가 되어버렸다. 기계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가끔은 기계처럼 발달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문명은 위대해져버렸다.
아니, 위대해졌다고 하기보단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맞는 말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지구가 기계처럼 돌아가고 사람들이 기계처럼 일한다면 세상을 어떻게 될까?”
실제로 그렇게 변하고 있다. 지구의 구성원인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계처럼 일하고 기계처럼 살고 있다. 실제로 기계화 되어버린 현재, 살인적으로 일을 하는 ‘인간 기계’들을 볼 때면
우리가 원하던 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세상은 저 멀리 멀리 날아가 버린 풍선이다.
풍선에 담긴 생각이 하늘 높이 올라가서 ‘뻥’하고 터져버리기 전에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풍선의 끈을 잡고 다시 땅으로 가지고 내려오는 것이 내가 앞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다.
우리들도 한번 쯤 다시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내 풍선은 지금 어디쯤 올라가고 있을까???
내가 바라던 대로 상임활동가가 되었지만, 앞으로는 더 힘든 일도 있겠고, 더 재미있는 일도 많을 것이다. 그저 난 바라보고, 느끼고, 그리고 실천하고 변화하면 되는 것이다.
난 그저 부족한 사람이고 덜된 활동가이다.
난 내가 하고자 하는 운동의 지향을 너무나도 부족하고 덜된 이 땅에 심는 게 참 좋다.
심어서 뿌리를 내리고 씨앗을 퍼뜨리고, 바람에 날려서 멀리멀리 날아가서 다시 그곳에서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씨앗을 퍼뜨리고…….
무럭무럭 자라서 지구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