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찼다. 부산역사에서는 분주함과 황량함이 동시에 풍겨왔다. 아펙 회의를 알리는 예의 화려한 휘장이 역사 곳곳을 감쌌고 유니폼 차림의 홍보요원을 대동한 홍보 보스들이 곳곳에 즐비했다.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는 감시요원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사물함은 굳게 닫혀있었고, 역전 벤치에는 어느새 보기 흉한 턱이 군데군데 세워져 벤치에 의지해 누워서 잠을 청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방해했다.
부산국제민중포럼이 열리는 부산대학교를 향해 달렸다. 생동감 넘치는 기운이 감돌기를 바라며 드넓은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썰렁했다. 오가는 학생들은 많았고, 아펙 반대를 외치는 생기는 감지하기 어려웠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미디어 워크샵이 진행되는 강의실에 헉헉거리며 안착했지만 잠시뿐이다. 바로 엉덩이를 떼었다. 저녁에 치러질 인권영화팀 사업 보고 참조 안티아펙영화제를 준비해야 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독립영화인 프로젝트>와 <예스맨>, 두 번의 상영이 준비되어 있다. 테스트를 진행할 때만 해도 별 문제가 없었던 빔 프로젝트가 정식 상영이 시작되고 몇 분후, 슈웅 꺼져버렸다. 계속 시도해봤다. 계속 슈웅 꺼져버렸다. 이런 상영사고다. 민망해라. 급하게 프로젝트를 공수해와 <예스맨> 상영만 무사히 시작되었다. 약 40여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메웠다. 신자유주의를 타깃으로 유쾌한 저항을 벌이는 주인공들의 행동을 보고 상영장안에 웃음이 만발하기를 기대하며, 뒷좌석에 앉아 4번째로 <예스맨>을 보았다. 반응이 좀 약했다. 에이 실망. 궁금했다. 상영이 끝나고 지인들에게 영화가 어땠느냐고 슬쩍슬쩍 물어봤다. 차마 웃음으로 감탄사로 표현되지는 못했지만 머리로 몸으로 무언가가 감전되었기를.
지하철 입구에는 전경들이 쫙 깔려서 소지품 검사까지 한다고 야단이다. 열을 맞춰 가지런히 서있는 그들은 존재만으로 위협적이다. 정말. 15억원을 넘게 들였다는 불꽃놀이에 늦은 저녁 버스가 사람들로 휘청거렸다. 불꽃 하나에 몇백 만원, 몇천 만원이라지. 하늘로 돈을 뿌리고 그 돈에 불을 붙여 뿜어 나온 화염에 즐거워하는 이들과 몸을 부대끼며 버스 안에서 낑낑댔다. 순간 그들이 조금 미워진 게, 답답하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모였다. 18일 대규모로 잡혀진 집회에서 경찰폭력 감시 활동을 벌이기 위해서이다. 불심검문을 당했을 때, 체증하는 경찰을 발견했을 때, 폭력 연행을 감행하는 전경을 보았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단시간에 몇 가지 기본 지식들을 머리에 집어넣었다. 실전 경험이 없는데 당당하게 잘 할 수 있을까. 조금 긴장되었다.
이윽고 만났다.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펙 반대를 외치며 모였다. 집회 대오는 두 쪽으로 갈라져 두 수영대교로 행진했다. 족히 몇백 미터는 됨직한 수영대교를 가득 메우며 기다리고 있었다. 전경들과 닭장차가. 그리고 맨 앞에서는 컨테이너 박스 몇 개로 바리케이드가 쳐졌다. 그들은 살수차와 방패, 카메라로 무장했다. 위로 솟아오른 화려한 빌딩 몇십 채가 다리 위 전경들의 배경그림이 되었다. 현기증이 났다. 철벽 같았다. 살을 엘만한 추위를 감당하고 물에 뛰어 강이라도 건너야 하나? 하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쇠파이프를 들고 있던 이들에게 연행 시 참조하라고 행동지침이 담겨진 작은 카드를 나누어주었다. 긴장된 순간을 앞두고 바스락 흐르는 미동.
그들은 물대포를 사정없이 쏘아댔다. 합법이냐 불법이냐 가리지 않았다. 경찰의 위법 행위를 체증한다고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다가 물대포를 맞았다. 모 까짓것. 별로 춥지도 않았다. 몇 시간 후 악을 썼다. 집회 대오와 대치하는 전경들을 향해 카메라를 계속 들이대고 있는데 저 쪽에서 좀 치우라고 외쳤다. 경찰청장이 시위참가자들의 체증도 가능하다고 공표한 거 모르느냐고 소리쳤다. 누가 죽창을 휘둘렀다. 어떤 전경이 시위 참가자들에게 빼앗은 대나무로 몸을 쑤셨고,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는 것이 그가 분노한 이유였다. 창공에서는 헬리콥터가 윙윙거렸고, 스피커로 고운 목소리는 이어졌다. “여러분의 행동은 모두 체증되고 있습니다.” 캠코더 배터리가 나간 상태였다. 이런 젠장.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핸드폰을 들이댔다. 그리고 계속 해보라고 소리쳤다. 이미 어둠은 짙게 깔려 있었다. 감시단 조끼를 두른 내 모습을 누군가가 후레쉬를 터뜨려 찍었다. 조금 무서웠다.
몇몇 사람들은 이미 널브러져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보건의료 지원단은 사람들의 머리를 붕대로 감아주고 있었다. 컨테이너 박스를 무너뜨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썼다. 컨테이너 박스는 하나씩 무너졌지만, 경찰은 보폭을 넓혀오더니 집회 대오들이 차지하던 면적을 잠식해왔다. 그리고 그 시간은 끝이 났다.
길을 지나는 한 아주머니가 애를 쓴다며 엉덩이를 두들겨 주었다. 어머 이런. 그래도 고마웠다. 어떤 아주머니는 경찰에게 화를 입으면 어쩌냐고 재빨리 감시단 조끼를 벗으라 했다. 진정 뭉클했다. 이 시간에 대교 너머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만찬을 벌일 테지. 원죄없는 경찰 몇 명과 질기도록 싸우는 우리들이 아웅다웅 우습게 보이니?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선동적인 다큐멘터리의 끝맺음에 곧잘 식상해하지만 의지의 낙관은 중요하다. 거리는 온갖 생각들의 교차로다. 거리 투쟁이 선사하는 역동성과 집결된 이들이 내지르는 함성, 그리고 온기는 나에게 꽤나 약발 받는 보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