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말이나 6월 초가 되면 그렇듯 올해도 6월 7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바로 신촌 ‘차없는 거리’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열리기 때문이다. '퀴어퍼레이드'는 1969년 미국 뉴욕의 게이바인 스톤월에 경찰이 들이닥쳐 범죄 예방을 빌미로 손님들을 함부로 대한 것에 성소수자들이 적극적으로 저항한 것을 기념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자리 잡았고, 한국에서도 2000년에 시작해 올해로 15회를 맞았다.
그러나 올해 '퀴어퍼레이드'는 전처럼 즐거운 마음으로만 참여할 수는 없었다. 서대문구청이 반동성애 단체의 조직적인 항의에 퍼레이드 장소 사용 승인은 취소했지만, 정작 동성애 반대를 내건 행사는 퍼레이드 이틀 전에 급작스레 승인하였고, 반동성애 단체들의 맞불집회도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늘 그랬듯 행사장은 여러 사람의 즐거운 에너지로 활기가 넘쳤다. 예상대로 동성애혐오자들이 퍼레이드 사전 행사장 중간 중간에 ‘동성애는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원죄(sin)’이니 ‘동성애가 아이들을 망친다’는 전형적인 혐오 표현들이 적힌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있었지만 행사의 흥을 깰 수 없었다. 하지만 퍼레이드가 시작되는 5시 반이 되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동성애혐오자가 달려들어 인권운동사랑방 깃발이 달린 깃대를 부쉈고, 반동성애 단체 사람들이 행진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드러누워 행렬을 막아섰다. 결국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신촌 유플렉스 인근에서 4시간을 묶여 있어야 했다. 그 4시간은 '퀴어퍼레이드'가 필요한 이유를 더 극적으로 드러낸 것인 동시에, 공적인 공간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 마구잡이로 일어나는 상황에서 공권력의 역할에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남겼다.
성소수자들의 노력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동성애는 인정할게. 하지만 내 눈에는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다양한 성별 정체성과 성적지향을 인정하는 것이 시민의 미덕처럼 받아들여지니, 뭐라 하지는 못하지만 공공장소에서 나서지 말고 숨을 것을 강요하는 시선은 여전하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에 맞서 바로 당신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음을 드러내고,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성소수자의 당연한 권리를 지지하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점점 모이면서 '퀴어퍼레이드'는 지금처럼 확대되었다. '퀴어퍼레이드'를 성소수자들의 자긍심 행진이라 부르는 이유도, 밝은 대낮에 도심에서 벌어지는 퍼레이드가 더욱 의미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겪은 경찰의 행동은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다. 서대문 구청에 낸 장소 사용 승인 허가는 취소되었지만 '퀴어퍼레이드'는 집회로서 이미 경찰서에 신고 된 상황이었다. 이후 반동성애 단체들도 행사장 주변 곳곳에 반동성애 집회를 신고했기 때문에 경찰은 반동성애 단체의 심각한 방해를 예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 반동성애 단체 사람들은 행진이 시작하자마자 제일 앞의 행사 트럭을 손으로 막아 세우고, 참가자들에게 물을 뿌리거나 욕을 하였음은 물론, 아예 도로에 누워 엄연히 보장된 퍼레이드를 방해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퍼레이드 참가자와 도로에 누운 사람들 사이에 경찰관을 배치하고 초기 한 차례 해산을 시도한 이후 해산 명령만을 방송할 뿐 행진 통로를 확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 사이 도로에 누워 행진을 방해하던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고, 퀴어퍼레이드 참가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위협적인 혐오 표현을 쏟아내는 동성애 혐오자의 집회 방해 행위를 경찰이 오히려 조장하고 보호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드러누워 월드컵 응원처럼 그들이 외친 대한민국은 ‘너희는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존재하지 않아’라는 목소리로 들렸다. 결국 경찰은 퍼레이드 참가자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했음은 물론이고 혐오 표현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것과 같다.
어느 공간도 누군가에게 함부로 독점될 수 없기에 중복 집회는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모두의 공간에서 특정 사회 구성원을 혐오하고 배격하는 행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나아가 그 방식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으로 이어졌음은 심각한 문제이다. 경찰이 내세우는 ‘공공질서’는 결코 공권력의 통제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 그중에 특히 존재와 주장마저 부정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함부로 공격받지 않고 보장받을 때 의미를 가진다. '퀴어퍼레이드' 당시에 경찰은 그러한 환경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 즉 그동안 억눌려 왔던 성소수자들이 위협받지 않고 당당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사전에 집회 공간을 분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퍼레이드가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결국 '퀴어퍼레이드'는 한밤중에야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행사 트럭을 모두 돌려 다른 길이자 원래의 행진 코스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이미 집회․시위의 자유를 심각히 훼손당하였다. 대법원 판례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단순히 집회할 자유로서가 아니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의사를 표현할 자유임을 분명히 하였다. '퀴어퍼레이드'가 굳이 한낮의 도심을 행사 공간이자 시간으로 삼는 이유는 성소수자로서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고 권리를 인정받으려는 성소수자들의 의지이다. 그러나 '퀴어 퍼레이드'는 경찰의 방조로 인해 한밤중이 되어서야 진행됨으로써 밝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드러내고 존재를 알리려는 목적을 온전히 실현해 낼 수 없었다.
오랫동안 지체되었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킨 많은 이들은 신촌 거리를 누비며 한 해 중 성소수자에게 가장 소중한 저녁의 밤을 만끽하였다. 하지만 어느 해보다 유독 서러움의 눈물을 짓는 이들도 많았다. 행진의 마지막 코너였던 신촌 로터리를 돌면서 참가자들에게 인사하는 퍼레이드 준비팀을 보면서 왈칵 쏟아는 그 눈물은 그래도 해냈다는 느낌 반, 서러움 반이었다. 내년에도 '퀴어 퍼레이드'는 열릴 것이고 많은 이들이 그 행렬에 함께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첫 걸음은 어쩌면 올해 퍼레이드의 취지에 상처를 준 서대문구청, 경찰 등 공공기관에 그 책임을 분명히 묻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