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무지개농성단 서울시청 점거 농성을 마치며 사람들끼리 언젠가 서울광장에서 퀴어퍼레이드를 하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고 농담반 진담반을 던졌었다. 우스갯소리가 6개월만에 실현될 줄 모르고 말이다. 서울 광장은 그동안 세월호를 비롯한 다양한 이슈의 집회가 열려 왔기에 익숙한 곳이다. 하지만 유독 지자체들은 서울 광장을 비롯해 주요 도심 지역에서 성소수자 관련 행사를 열려고 하면 다양한 이유로 거절하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성소수자 관련 행사를 서울이 한 가운데인 서울 광장에서 한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의미이면서 또한 쉽지 않은 일로 여겨졌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다.
지난 6월 28일 서울 광장을 지나가 본 사람들이면 어쩌면 전혀 다른 서울 광장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퀴어 퍼레이드에 함께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들고 있던 깃발, 부채, 옷 등 다양한 종류의 무지개로 채워진 광장의 모습을 말이다. 전날 미국 대법원이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 보도되면서 퀴어 퍼레이드에 대한 관심도 더욱 늘어났다. 퀴어 퍼레이드가 늘 그랬지만 이날은 더더욱 생동감이 넘쳤다. 공식 부스 행사 시작 시간인 11시가 되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찾아왔다.
그렇지만 이번 퀴어퍼레이드는 우리 사회의 혐오와 직면하는 날이기도 했다. 지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과정에서도 그랬듯이 이미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하는 기반으로 사용했던 혐오 조장 세력들을 이날도 만날 수 있었다. 퀴어퍼레이드를 막기 위해 대한문, 인권위, 프레스 센터 쪽에 집회 신고를 낸 혐오 조장 세력은 아침부터 북을 두드리거나 각종 혐오 피켓 등을 들고 행사장 주변에서 참가자들을 위협하였다.
내게 작년 퀴어퍼레이드의 마지막 기억은 눈물이었다. 행진 차량 앞에 드러누운 혐오 조장 세력에 의해 4시간 정도 행진이 지체된 뒤에야 결국 저들을 밀어내고 행진을 마무리지었을 때 행진 코스 마지막에서 퍼레이드를 마친 참가자들을 맞는 퀴어 문화 축제 조직위를 보면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하루의 단 하루마저도 성소수자의 사랑을, 인권을 말하는 것마저 막아 세우는 현실에 분노보다 슬픔이 먼저 터져 나왔다. 그런 기억이 있기에 올해 퀴어 퍼레이드는 남다른 마음으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저들이 퀴어퍼레이드를 막은 작년부터 어쩌면 올해 퀴어퍼레이드는 준비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올해 퀴어 퍼레이드는 저들의 혐오에 그저 당하는 시간들은 아니었다. 성소수자 단체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이 함께 감시단을 꾸렸었고, 많은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저들에 대항할 아이템들을 준비해와서 자발적으로 혐오에 맞섰다.
올해 퀴어퍼레이드에도 차량 앞에 누워 행사를 방해하는 등 저들의 실력 저지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막아내었다. 이번 퀴어퍼레이드는 도심에서 최초로, 그리고 가장 긴 거리를 돌며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로 참가자들 각자에게 남다른 의미가 남았을 거라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감시단을 하느라 부스나 무대 행사, 퍼레이드 자체도 맘놓고 즐기지는 못했지만 저들의 방해에 굴복하지 않고 모두가 뜻과 의지를 모아 결국 행진을 성사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작년 퀴어퍼레이드를 마치고 나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앞으로도 혐오 조장 세력들은 성소수자,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를 이용하여 혐오를 더욱 조장할 게 분명하다. 성소수자 행사들은 앞으로도 그런 시련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음을 예감한다. 그러나 그만큼 단단해진 사람들의 마음,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점점 우리 안에서 커지고 있음이 우리에겐 희망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