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들이 집회시위에서 경찰감시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0년 아셈(ASEM) 대응 때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단체연석회의 경찰대응팀(현재는 공권력감시대응팀)을 중심으로 2005년 부산 에이펙(APEC), 2006년 평택 미군기지반대투쟁,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 2008년 미쇠고기수입반대 촛불시위, 2009년 용산참사 규명시위, 2011년 등록금집회, 희망버스 등 대규모 집회에서 경찰 폭력을 전문적으로 견제, 감시하기 위해 활동해왔다.
대규모 집회에서 경찰감시 활동을 할 때마다 감시자로서 인권활동가들이 숫자로 너무나 열세하다는 것, 그때그때 당위적 요청에 따라 즉흥적으로 수행하는 것, 그렇다보니 사전교육이나 사후보고서 작성 등이 힘겹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집회를 주최하는 측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연행되어도 함께 책임지지 못하고 각자가 재판에 대응하는 것으로 갈무리되곤 했다. 또한 현장에서 경찰감시 활동을 할 때마다 집회참여자들에게 듣는 소리가 있다. “수고하세요.” 물론 고생하고 있긴 하지만, 내가 뭔가 집회참여자들과 유리·분리되고 있는 느낌을 받았고, 대신 싸우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상상과 고민을 했다. 인권단체가 갖고 있는 경찰과 집시법에 관한 지식, 싸우고 항의하는 방법을 집회참여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경찰, 검찰, 사법부는 일사분란하게 법과 질서를 앞세워 대응하는데, 왜 우리는 각자 고군분투하는 걸까? 집회시위가 어떤 것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적인 권리로 인식되지 않고 자신의 싸움주제와 일치시키면서 우리의 자유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4.19나 6월 항쟁 등은 집회시위를 통해 쟁취되었는데, 왜 지금 우리는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아래 집시법)의 왜소한 틀에 갇혀 있는 걸까?
경찰이 그어놓은 선을 들고나면서
그런 고민 끝에 인권운동사랑방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저항과 연대의 권리’로, 싸우고 있는 싸우고자 하는 사람과 ‘함께’ 넓혀가자는 문제의식을 벼리기 시작했다. 경찰은 집회시위의 권리를 합법의 틀 속에서 철저하게 관리, 규율, 통제하기 위해 준법 양해각서(MOU)체결을 강제하고, 심리적으로 차벽과 물포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한다. 즉 경찰은 합법의 틀 속에 우리의 자유를 가두어서 조금이라도 ‘불법’행위가 나타나면 득달같이 해산명령을 내리곤 한다. 어느덧 운동진영도 패기와 씩씩함을 잃고 경찰이 허가해준 길로 행진하고 참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봉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성찰 속에서 우리는 경찰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려 하는 온갖 조치에 저항하며, 경찰이 금그어놓은 선을 자유롭게 들고나면서 거리에서 표현하고 연대할 자유를 외치고 싶은 것이다. 과감하게 합법의 틀을 벗어던지고 불법의 자유를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 집회시위를 만들고 조직하는 사람들에게로 ‘스며들자는 것’이다.
희망버스 경찰감시 활동과 후속활동으로 이어진 희망버스 돌려차기의 경험은 여러모로 그간 경찰감시 활동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경찰감시활동을 집회에 참여하는 많은 이들에게로 확장하려 했던 것 △감시활동이 끝난 후 보고서를 작성했던 것 △경찰의 불법행위에 대해 기획소송을 했던 것 △기소된 사람들과 함께 재판을 준비했던 것 △경찰감시활동으로 연행된 인권운동가에게 무죄선고를 받아낸 것 △기소된 사람들과 ‘집회의 자유, 연대할 권리’라는 이름으로 문화제를 만들어낸 것 등등의 경험은 우리가 왜 싸우려했는지 그 정당성을 서로가 확인하면서 국가권력을 향해 맞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워크숍에서 첫 단추를
그 첫 단추를 4월 9일 현재 각계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 노동자, 철거민, 학생, 인권단체들이 모여 ‘집회시위의 권리를 넘어 연대와 저항의 권리 찾기’ 워크숍을 통해 끼웠다. 투쟁하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집회시위의 자유와 관련된 우리의 권리가 어떻게 막히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집회신고를 할 때부터 회사 측이 용역들을 사용하여 집회신고를 하는 것에 맞서기 위해서 밤샘 집회신고를 하기도 했고, 집회 신고 과정에서 경찰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기도 했으며, 집회신고서를 쉽게 반려하여 그 문제를 갖고 싸움을 하기도 했다. 또한 집회 과정에서도 불법 채증과 경찰의 경고방송 등 집회 방해 행위들이 벌어지고 있다. 경찰은 장애인들이 집회 참여를 못하도록 중간에 블록을 쌓기도 했고 쌍용자동차 대한문에서는 집회신고 물품조차도 내리지 못하게 하곤 했다. 집회 이후에는 채증에 근거한 약식기소 등으로 벌금폭탄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집회를 가로막고 연대의 권리를 가로막았다. 이어 워크숍에서는 공동대응을 위해 ‘집회시위 제대로 해보자’라는 모임을 정기화 하고 집회시위와 관련해 일상적인 소통과 교육을 하기로 했다. △‘집회시위 제대로 해보자’ 선언 운동 조직 △벌금폭탄에 대한 공동대응 △집회대응 매뉴얼 교육, 제작 △현장대응 강화 등이 제안되었다.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이 모임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소중한 이유는 집회시위의 자유에 관해 우리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드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자신감은 불의와 부정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사이에 오고가는 정감을 함께 나누어서일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겪는 아픔을 공감하고 지지하며 스스로 투쟁을 결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