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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들과의 신나는 연대, 퀴어퍼레이드

6월 2일 청계천 2가 한화빌딩 앞에서 벌어지는 문화 축제

스톤월, 저항의 시작

스톤월은 미국 뉴욕에서 동성애자들에게 유명한 술집이었다. 동성애자들은 이곳을 오아시스처럼 느꼈고, 괴로운 일상의 피난처로 여겼다. 하지만 당시 뉴욕 게이바(Gay Bar, 남성 동성애자들이 주로 가는 술집)들의 상황은 형편없었다고 한다. 물을 탄 음료의 가격은 비쌌고, 사용한 잔은 물통에서 대충 헹군 후 다시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게이바를 주로 운영했던 마피아들은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는 고사하고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피해 모여 있는 동성애자들에게 린치를 가하기도 했고, 경찰의 출입을 용인하며 그들에게 뇌물을 건네기도 했다고 한다.

1969년 스톤월 항쟁 당시의 모습<출처; www.stonewalldemocrats.org>

▲ 1969년 스톤월 항쟁 당시의 모습<출처; www.stonewalldemocrats.org>

1969년 6월 27일 새벽 1시 20분. 여느 때와 같이 경찰은 스톤월의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하얀 경고등이 깜빡거렸고 단골손님들은 신호에 따라 즉시 춤을 멈췄고, 경찰들은 모욕적인 말을 하며 손님들과 종업원들을 끌고 나갔다. 여기까지는 오히려 너무나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스톤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평소와는 달리 경찰을 향해 야유를 퍼붓고 호송차를 가로막기도 했다. 항의하던 누군가가 경찰과 주먹질이 오갔고 이런 광경을 본 사람들은 경찰에게 동전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런 긴장 속에서 군중들의 격한 분노는 식을 줄 몰랐고 경찰은 베트남전 반대 시위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세워진 폭동 진압 정예 부대인 전투경찰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들의 등장에도 사람들은 겁을 먹지 않았고 병과 벽돌을 던지고 쓰레기통에 불을 놓았다. 경찰이 거리를 ‘정리’할 때까지 사람들은 피를 흘렸고, 이러한 저항은 ‘동성애자의 권리!’를 외치며 3일이나 계속되었다.

스톤월에서 불어온 해방의 바람 - 퍼레이드

스톤월 항쟁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1970년 6월 28일, ‘동성애자 자긍심의 날’이라고 알려진 뉴욕에서의 첫 번째 행진은 2천여명을 동원했고 동시에 L.A., 시카고, 보스턴 등에서도 행진이 진행되었다.

스톤월 항쟁은 그저 성난 동성애자들의 단발적인 항의가 아니라 1968년을 기점으로 세계를 뒤덮었던 저항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당시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베트남 전 반대 운동, 그리고 흑인·여성 등 민권운동이 확산된 시기였기에 사회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들도 이에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스톤월 항쟁은 동성애자들이 스스로의 자긍심을 찾고 차별과 억압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투쟁이었으며 스톤월 항쟁 이후 동성애자 운동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그 중 직접 거리 행동인 ‘퍼레이드’가 등장했다.

해방의 바람은 이곳에도

2007 퀴어문화축제

▲ 2007 퀴어문화축제 "This is Queer!"<출처; www.kqcf.org>

국내에서는 2000년부터 퀴어문화축제가 열렸고 그 행사의 일환으로 퀴어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올해로 여덟번째를 맞이하는 퀴어문화축제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벽장 속에 갇혀있던 자신의 성정체성을 긍정하는 용기 있는 축제다. 올해는 ‘This is Queer!(이것이 퀴어다!)’라는 슬로건으로 열리며 축제에서는 비하와 차별의 두려움마저 자긍심으로 바꾸어버리는 성소수자들의 거침없는 에너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축제 기간에는 6월 6일부터 10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LGBT(Lesbian 레즈비언, Gay 게이, Bi-sexual 양성애자, Transgender/sexual 트랜스젠더) 영화제가 열리고, 포럼, 세미나, 사진전, 공연 등이 2일부터 10일 사이에 내내 펼쳐진다. 성소수자들의 직접 거리행동인 퀴어퍼레이드는 6월 2일 낮 12시부터 청계천 2가 삼일교(한화빌딩 근처) 앞에서 열린다. 퀴어퍼레이드는 ‘다름’이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 너와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무지갯빛으로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다양성이 존재함을 거리 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될 것이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2005년 “over the rainbow”라는 슬로건으로 성별, 나이, 성정체성, 인종 등에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참가했다. △성소수자들의 노동권 보장 △HIV/에이즈의 잘못된 편견 바로잡기 △동성결혼합법화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반검열 반대 △동성애 억압 없는 다른 세상을 향한 목소리 △트렌스젠더 권리보장 △동성애자의 이름으로 전쟁 반대 등과 같은 요구를 들고 거리의 시민들을 만났다. 또 2006년에는 “rainbow action”이라는 슬로건으로 참가했다. 이 해 2월에 터진 군대 내 동성애자 병사 인권침해 사안과 성전환자 성별정정 보장 그리고 HIV/에이즈 감염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에이즈 예방법의 올바른 개정을 주된 요구로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HIV/에이즈 인권연대 나누리+가 함께 했다.

2007 퀴어퍼레이드 참가단 ‘AIDS & Solidarity+ 에이즈와 연대’ 대열에 동참을!

우리 사회에서 에이즈는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들이 걸리는 병’, ‘동성애자들의 질병’, ‘하늘이 내린 천벌’ 등과 같은 ‘은유’를 입고,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성매매 여성 등을 공격하는 무기로 이용되어 왔다.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들을 음지로 내몰고 있는 사회와 에이즈 감염인에게 낙인을 찍어 감시와 차별을 용인하는 정부 정책이 바로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었다. 지난해 동성애자인권연대를 비롯해 여러 인권·사회단체들은 에이즈 예방의 핵심은 감염인 인권증진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활동들을 펼쳤다. 지난 한 해 동안 거리 캠페인, 기자회견, 토론회, 문화제 등을 통해 에이즈 예방법 개정을 위한 공동행동에 나서기도 하고 치료약가 상승으로 에이즈 감염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한미 FTA에 반대하기도 했다. 올해에는 ‘AIDS & Solidarity+ 에이즈와 연대’라는 주제로 퍼레이드에 참가함으로써 퀴어퍼레이드를 통해서도 에이즈 감염인들의 인권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2007 퀴어퍼레이드 참가단 'AIDS & Solidarity+ 에이즈와의 연대'<출처; www.outpridekorea.com>

▲ 2007 퀴어퍼레이드 참가단 'AIDS & Solidarity+ 에이즈와의 연대'<출처; www.outpridekorea.com>


성소수자들은 1년에 한 번 열리는 퍼레이드의 참가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단지 성적 지향이 다를 뿐인데도 성소수자들의 성정체성은 학교에선 벌점, 자퇴 권고, 퇴학으로, 군대에선 군형법 위반으로, 직장에선 해고로 이어진다.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이기도 한 두 명의 청소년은 학교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야 했고, 군대에 간 한 동성애자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군 당국으로부터 ‘성관계 사진’을 요구받기도 했다. 홍석천씨는 커밍아웃이 아닌 아웃팅(자신의 성정체성이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으로 세상에 ‘동성애자 홍석천’으로 알려지면서 모든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성소수자들의 유쾌한 행동절정!’ 퀴어퍼레이드는 성소수자들의 직접 거리 행동과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든든한 연대의 대열이 절실하다. 퀴어퍼레이드는 성소수자들 곁에 사회 진보와 평등 그리고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향한 든든한 ‘동지’들의 참여로 더욱 빛날 것이다. 성별, 나이, 성정체성, 인종, 국적 등과 관계없이 성소수자들의 용기있는 행동에 위풍당당하게 연대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
덧붙임

장병권님은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국장입니다.

* 퀴어문화축제조직위 홈페이지 www.kqcf.org

* 동성애자인권연대 홈페이지 www.outprid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