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은 누구나 다 알듯이 조선시대 양반네들이 사는 건축에서 특정 공간을 이르는 말이다. 바깥 주인이 (남정네들이) 손님들과 정치를 논하거나 풍류를 즐기거나 등의 이유로 필요했던 공간이었다.
그래서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이름에서 혹시 남성 중심적인 공간이려니 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현재 이사 온 충정로의 공간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화장실에 붙어 있는 작은 메모를 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아님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궁금하신 분은 꼭 사랑방을 방문해주시길!!)
비단 이는 공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인권적 감수성을 중시하는 사랑방 식구들의 모습에서, 약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보려하는 모습에서 많이 느껴진다.
문도, 문턱도 없는 곳
사실 인권운동사랑방은 옛날로 치면 동네 느티나무 밑에 있는 정자나 나무 밑의 의자 같은 공간이다. 누구나 들러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을 배우는 곳이다. 사랑방은 인권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살아가면서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잃어버렸던 권리에 눈을 돌리는 경우는 사람마다 계기도, 시기도 다양할 것이다. ‘인간답게 살 권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열려진 곳이다. 내가 지금 자원 활동을 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인권팀(이하 신자인팀)에 있는 자원 활동가들의 나이도, 성도, 직업도 무척 다양하다. 그런 다양함이 충돌하지 않고 이러저러한 활동을 이루는 것도 열려있는 문화이기 때문이 아닐까. 신자인팀의 모임은 긴 걸로 유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많은 인원이 길을 논하다보니 길어진 게 아닐까. 그래서 모두들 모임이 늦게 끝나서 힘들다고 불평하는 이가 없다. 왜냐면 모두들 토론하면서 배우고 또 그러면서 길을 찾는 기쁨은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일 거다. 다양함 속에서 자율성과 통일성이 가능하려면 상호존중이 필요하다.
평등한 관계 지향
인권에 대한 인식은 자신이(또는 타인이) 존중받아야할 존재임을 자각하면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자신이 존중 받고 있고 상대방도 존중받고 있다는 상호존중은 평등한 관계에서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사랑방에서 일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하는 모든 일에서 ‘권위’가 느껴지는 경우는 없다. 그 사람의 지위,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서로 동등하게 대한다. 나이가 많다고 으스대거나 좀더 안다고 위에 서려고 하는 경우는 없다. 보통 더 안다는 이유로 위에 서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 세상 사회이고 운동 사회인데 말이다. 아는 것을 알려줄려고 할 뿐 다른 도구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배우는 입장에서 부담이 없다.
얼마전 ‘삶세상’ 인터뷰 기사를 위해 ‘청소년 빈곤’에 대해 논의할 때도 그랬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청소년의 빈곤에 대해 논문자료를 함께 읽으며 공부하고 방향을 잡아갔다. 청소년이 빈곤으로 인해 잃어버려야 하는 교육권, 건강권 외에도 문화적, 관계적 권리가 박탈당하고 있음을 새롭게 알아갔다.(물론 좀더 많은 사람과 논의를 한 것이 아니어서 아쉬웠지만 말이다.)
인간적인 삶을 위해 현재 인권운동은 사실 현 정부(제도)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권력은 인권을 볼모로 권력과 부를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들이 하는 권력에 대한 도전이 좀더 인간적인 가치를 둔 삶의 개조로 이어질 수 있으려면 많은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쉽게 달성되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러기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직 뚜렷한 답은 없다. 우선 사랑방에서 좀더 배우고 좀더 실천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