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분신·사망한 노동자의 유골을 탈취하여 강제로 장례를 치르게 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에 항거하여 분신한 현대자동차 고 양봉수 씨의 유해는 사망 7일 만인 19일 경찰의 폭력적인 행위로 인해 주변 동료노동자들의 뜻과는 달리 화장된 뒤 강물에 뿌려지게 되었다.
양씨의 유가족은 18일 밤부터 19일 새벽까지 대구 동산병원에서 회사측과 장례문제에 관한 협상을 진행하였는데, 협상을 마친 유가족들은 "장례에 관한 전권을 양씨의 당숙인 양희열 변호사(회사측 담당 변호인)에게 일임하기로 했다"고만 밝혔다. 이에 대해 대책위 관계자들은 "가족들이 회사측의 협박과 회유에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회사는 유가족에게 위로금 2억과 치료비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8시30분 경부터 대구 동산병원에서 경찰병력이 대거 증강된 가운데 진행된 발인에서 영안실을 지키던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길'을 부르며 오열했으며, 발인을 마치고 운구차에 타려하던 노동자들을 경찰이 심하게 제지하자 이에 항의하는 유가족과 경찰의 몸싸움이 심하게 일어나기도 하였다.
유가족과 노동자들이 탄 운구차가 오전 9시30분경 화장터인 대구 경산의 대구공원묘지관리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경찰은 병력 1천여명을 화장터 주위에 배치했으며, 낮 12시경 화장 절차가 모두 끝나고 양씨의 유가족들과 노동자들은 양씨의 유골을 양산 솥발산공원묘지(편집자주-91년 이후 영남지역의 민족민주운동가들이 묻히는 곳)로 옮기려고 했으나 경찰측의 방해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때 현대자동차 노조원 30여명, 대구 노동자 50여명이 1천명의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채규정 씨 등 다수 노동자가 부상을 입었고, 주간노동자신문의 사진촬영기자는 사복경찰에 연행됐으며, 경찰들은 유가족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였다.
경찰은 현대자동차 버스에 유가족들을 강제로 태우고, 사복경찰이 탄 버스 3대와 전경차량 5대가 뒤따르며 목포로 향했다.
오후1시 화장터에 남은 노동자들은 집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대구노련의 박용선 씨는 "우리가 힘이 없어 양봉수 동지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고 말하며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오늘과 같은 분통한 일이 다시는 없어야할 것"을 다짐했다.
19일 오후 9시 현재 고 양봉수 씨의 유해는 목포 영상강 하구언 둑에 뿌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이날 오후5시30분 잔업을 거부한 현총련 소속 3천여명의 조합원들은 울산 일산해수욕장에 모여 '고양봉수열사 추모집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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