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약자 중심으로 교통정책 변화되어야
4월30일 녹색교통운동과 일본 교통권학회 주최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교통권신장을 위한 한.일 국제심포지엄’은 약자의 측면에서 바라본 교통권의 문제와 생활영역으로써의 보행권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각인시켜주는 기회였다.
임삼진 녹색교통운동 사무국장은 ‘자동차화와 시민교통권’의 주제발표를 통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교통행위는 보행”이라며, “보행권과 장애인교통권, 대중교통 이용자의 교통권등을 중심으로 교통정책과 문화가 변화되어야 함”을 지적했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자가용 이용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거리를 걷는데, 쾌적한 보행환경을 만드는 것은 ‘교통권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자동차 이용자 역시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의 입장으로 바뀌는데, 제대로된 보행환경이 마련되면 보행자나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임산부, 자전거이용자 등 모든 교통약자들이 편해진다는 이야기다.
보도통행사고 1천3백건 넘어
다양한 형태로 보행권은 침해당하고 있다. 경찰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보도통행중 교통사고는 90년들어 평균 1천3백66건이 발생했고, 부상자는 1천6백19명, 사망자는 57명으로 집계되었다. 94년에는 보도통행중 1천6백50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으며, 49명이 죽고, 1천7백53명이 부상당했다. 차도, 횡단보도에서 일어난 사고가 아닌 보행자의 전용공간이여야할 보도상에서조차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사유지라는 소유권을 이유로 불법주차에 대한 단속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횡단보도의 육교 또는 지하도화이다. 이는 동일한 생활권을 인위적으로 분리시키는데 문제가 있다. 이같은 공간분리는 휠체어장애인에게는 ‘거대한 절벽’이자, 사회참여를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창살없는 감옥’이다. 또한 노약자나 짐을 든 사람, 유모차를 끌고 건너는 보행자들에게는 ‘험한 산’과 같다. 시청주변의 도로는 반인간적 보행환경의 전형인데, 이는 교통운영자들이 기본적으로 보행교통 자체를 무시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장애인과 보행자등 교통약자의 교통편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단적인 예라고 임사무국장은 지적했다. 유럽에서는 보도중심으로 되어 있어 육교나 지하도를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보행 역시 생활공간
보행체계의 미흡은 인구가 밀집한 곳일수록 심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하철역은 그 지역의 중심적인 곳에 위치해 있으므로 인구이동이 빈번할 수 밖에 없는데, 보행환경은 최악의 취약지대라고 그는 말했다. 실제 지하철역 주변 이면도로 진출입 지점의 횡단보도 설치상황을 보면, 횡단보도가 하나도 설치돼 있지 않은 곳이 32개역 가운데 8개역, 설치비율이 40% 미만인 곳이13개 역으로 전체의 2/3 가량이 위험지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보행은 단순히 ‘이동’이라는 목적을 가진 교통수단의 의미를 넘어 보행로를 통해 옥외공간에서 이뤄지는 생활전반에 활력과 새로움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생활공간’의 차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행자사고율 선진국의 2-3배
94년5월 녹색교통운동과 미디어 리서치가 실시한 <보행자 교통환경에 대한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중 85.6%가 녹색신호가 짧다고 지적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호운영은 교통운영자들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자동차 중심으로 흐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음으로 들 수 있는 것은 보행자 녹색점멸신호의 문제이다. 초등학교 주변 신호기를 제외한 모든 신호기가 정상인이 1/3을 건너면 점멸 등으로 바뀌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보행신호도 ‘1초당 1미터’라는 빠듯한 시간을 주어 안심하고 건널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보행자 사고율이 선진국(미국 15%, 일본 25%) 보다 2-3배 많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적이다.
아베 세이지(교통권학회 이사)교수의 결론처럼 현대사회에 있어 교통은 사람의 사회적 생존을 위한 기본적 조건이 되었으며, 교통서비스는 의료서비스와 나란히 현대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것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