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실습생 직업선택권 보장 등 대책마련 시급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취업전선으로 나가야 하는 실업고 학생들. 이들은 ‘교육목적상’이라는 애매한 이유만으로 자신이 일할 직장과 노동조건을 선택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게다가 노조 가입을 이유로 다니던 직장을 강제 퇴사시키는 등 학교당국의 권한 남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지난 4일 성동구 (주)경보전기에서 숭덕공업고등학교(교장 이영자) 실습생 14명이 집단 사직한 일은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 준 사건이다.
서울동부지역 금속노동조합측(위원장 김지희)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경보전기 노동자들이 금속노조 가입을 발표하고 조합활동을 시작하자, 이틀 뒤인 25일 숭덕공고 안 아무개 교사가 회사를 찾아왔다. 안 교사는 실습생들에게 ‘노조에 가입한 사람이 누구냐? 노조활동을 하면 학칙에 따라 제적시키겠다’는 말을 하고 돌아갔으며, 결국 실습생들은 10월 4일자로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사했다.
숭덕공고 취업담당인 안 교사는 “학생신분에 조합활동을 해서는 안된다. 학생들이 경보전기의 노사문제에 휩쓸릴 것이 걱정돼 퇴사시켰다”며 사직을 강요한 사실을 시인했다.
실습생도 근기법 적용대상
민주노총 법규부장은 “학교측이 회사를 선정할 수 있고, 옮길 수도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거기엔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된다”며 “노조활동을 이유로 퇴사조치를 내리는 것은 불법”이라고 밝혔다.
89년 대법원 판례(사건번호 86다카2920)는 “고등학교 실습생들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며 실습생의 조합활동에 합법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직장선택문제 등과 관련한 학교측의 간섭과 재량권 남용을 막을 수 있는 뚜렷한 법적 장치는 없는 현실이다. 전교조의 송대헌 교사는 “현장의 실습생들에겐 불만이 많다”며 “최소한 본인의 직업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종강 한울노동상담소 소장도 “실습생 인권 보장을 위한 연구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실습생 인권 문제는 한 때 사회적으로 커다란 관심을 불러온 바 있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학칙에 따라야 하는 학생이라는 이중성 때문에 실습생들은 직장내에서 반인권적 대우를 받아 왔고, 그 실상이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숭덕공고와 같은 사례가 앞으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 부분에 대한 대책마련과 연구작업이 과제로 남고 있다.